[다산 칼럼] 규제개혁과 공무원의 손익함수
지난달 27일 예정됐던 규제혁신 점검회의가 회의 개최를 불과 1시간30여 분 앞두고 이낙연 국무총리가 준비 부실 등을 이유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회의 연기를 건의해 전격 취소됐다. 기존 대책을 재탕·삼탕하는 문제가 반복되는 데 대해 일종의 경종을 울린 것이다. 문 대통령 역시 이에 대해 “규제개혁이 답답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문 대통령이 규제개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 것은 이번 정부가 제시한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및 혁신성장의 3대 경제정책 중 혁신성장 부분에서 유독 가시적인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혁신성장에서 규제개혁은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이다. 규제개혁이 부진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현재 정책 결정의 지배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회의 정치적 편향성을 들 수 있다. 현재 야당은 규제혁신 5법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야당만 문제인가? 더불어민주당도 야당 시절 비슷한 법안에 반대한 경험이 있다. 여야가 바뀌면서 공수의 주체가 바뀌었을 뿐 국회가 규제개혁의 걸림돌임에는 차이가 없다.

그런데 오늘 필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규제개혁을 선도해야 할 공무원들이 왜 규제개혁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것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지배구조에서 핵심은 권한과 책임이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 국가정책의 결정구조에서 권한이 있는 곳에 책임이 있느냐는 것이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당사자인 행정부를 논외로 할 때 국회, 감사원, 언론, 시민단체 등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즉, 이들은 정책입안의 당사자인 공무원 입장에서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스테이크홀더(stakeholder)들이다. 그런데 이들 중 잘못된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주체는 거의 없다. 모든 책임은 오직 행정부, 그중에서도 담당 공무원이 부담해야 한다.

지난 3월 테슬라의 자율주행장치 오작동으로 운전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교통안전위원회는 일단 기술적으로 어떤 문제로 사고가 발생했는지 조사에 착수했는데 1년 이상의 조사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언론도 상·하원도 비정부기구(NGO)도 특별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일단 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과연 1년간 당국의 조사를 기다릴 수 있겠는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대략 예상해 보자. 사고가 나자마자 일단 언론들이 자동차 제조사 및 이를 허가한 관련 부처를 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낸다. 시민단체도 여기에 동참해 몇 가지 의혹을 제기하면서 정치권과 검찰이 나서 진상을 밝히라고 주문한다. 국회는 바로 청문회를 열어 제조사 경영진뿐 아니라 자율주행 자동차 판매를 허가한 관련 부처 공무원을 불러 다그친다. 감사원은 정책감사를 통해 판매를 허가한 해당 공무원에 대한 징계에 착수하고 최악의 경우 검찰에 고발 조치를 할지도 모른다.

필자가 위의 예를 든 것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 찬성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정책입안을 하는 공무원들이 왜 복지부동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예를 든 것이다. 기업지배구조 이론이 기반을 둔 대리인 이론의 핵심은 주인(principal)과 대리인(agent)의 이해가 일치하도록 대리인의 손익구조(payoff)를 어떻게 설정하는가다. 현재 공무원의 손익구조를 보면 규제를 풀었다가 잘돼도 크게 이득 볼 건 없지만 잘못되면 징계에다 최악의 경우 철창 신세까지 진다. 즉 상방이익(upside potential)은 제한되고 하방위험(downside risk)만 존재하는 손익구조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오목형(concave) 손익구조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공무원의 최적 대응은 위험 회피를 위해 규제를 풀지 않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정책결정의 지배구조에서 공무원에게 왜 복지부동하느냐고 비난해 봤자 공염불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정 규제개혁을 통한 혁신성장을 하겠다면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노력하는 만큼 정책결정의 지배구조 개선에도 진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