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韓·美 동맹 없으면 北비핵화 '공염불'
최근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의 집이 매물(賣物)로 나왔다. 진작 싼값에 나왔어야 하는데, 시간을 끌더니 핵(核)으로 리모델링을 하고 나서야 시장 매물로 등록했다. 그는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한 리모델링 공사를 솜씨 좋게 마무리했다. 반응은 뜨겁다. 김정은을 보자고 여기저기서 난리다. 아랫집 문재인(대통령)은 벌써 두 번 만났다. 옆집 시진핑(중국 국가주석)과도 석 달 동안 세 번을 봤다. 과거에 싸운 후로 말도 안 섞던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와도 회동했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만났는데 전 세계에서 모여든 3000여 명의 기자들이 ‘역사적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삐걱거리는 한·미 비핵화 공조

김정은은 잘 알고 있다. 자기 집이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를. 그 집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도 듣고 있다. 트럼프와 문재인 사이가 그렇다. 트럼프는 김정은의 집이 탐이 난다. 잘 협의해서 그 집만 사면 동네 평판도 좋아지고, 집안 선거도 문제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리수를 둔다. 친구 문재인의 뒤통수를 치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김정은과의 만남을 주선한 문재인에겐 일언반구도 없이 약속을 취소했다. 김정은을 만나서는 구매를 빨리 성사시키고 싶은 생각에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까지 언급했다. 애나 파이필드 워싱턴포스트 도쿄지국장은 ‘연타’로 뒤통수를 맞은 문재인의 얼굴을 트위터에 띄우고 “저 피곤한 얼굴을 보라”며 안쓰러워했다.

문재인도 만만찮다. 그는 연초 김정은으로부터 만나자는 제안을 받자마자 곧바로 ‘오케이’했다. 좋은 가격에 사서 자기 집과 합치고 싶어서다. 트럼프와 의논해야 했지만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가 너무 안 좋아서다. 지난달 말에도 트럼프가 미·북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하자 따로 김정은과 만났다. 한·미 동맹이란 단어는 이제 흘러간 레코드판에서나 들을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동맹 대오 복원해야 협상 성공

문재인과 트럼프의 관계는 그래도 ‘양반’이다. 시진핑과 트럼프 사이는 ‘한판 붙기’ 일보 직전이다. 시진핑은 김정은의 집이 트럼프에게 팔려 트럼프와 이웃이 되는 게 못내 불안하고 싫다. 그래서 김정은을 세 번이나 불러 “그렇게 어려우면 내가 도와주겠다”며 트럼프와의 거래를 훼방 놓고 있다. 입만 열면 시진핑을 칭찬하며 ‘우리는 좋은 친구’라고 노래를 부르던 트럼프는 시진핑의 생일날인 지난 15일 2000억달러 ‘관세폭탄’을 발표했다.

김정은의 집은 잘 팔리면 동네 경사지만, 거래가 잘 안 되면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는 핵폭탄이다. 김정은은 집을 잘 팔아 대대손손 떵떵거리며 살 꿈에 부풀어 있다. 그래서 열심히 한국과 미국, 미국과 중국 사이를 오가며 흥정을 붙이고 있다. 싱가포르 ‘핵 담판’ 쇼를 벌이며 초기 마케팅에는 성공했다.

한국과 미국이 ‘김정은 페이스’에 말리지 않고 집 매매를 성공시키려면 협력이 필수다. 동맹의 대오(隊伍)부터 복원시켜야지, 거꾸로 서로 뒤통수치기로 김정은의 협상력만 높여줘서는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후부터 “오래전 실패한 (비핵화 관련) 영화를 다시 틀지 않겠다”며 북한 핵 해결 의지를 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비핵화 협상 국면을 “하늘이 준 기회”라고 평가했다. 하늘이 준 기회를 잡아 흥미진진한 새 영화를 보게 될지는 두 사람이 완벽하게 공조하느냐에 달려 있다.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