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심의·제재 절차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고의성’보다는 ‘회계처리 적정성’ 쪽으로 쟁점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회계처리를 변경한 것이 ‘고의적 분식’이라는 금융감독원 조치안에 대해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논리 부족을 이유로 2012년 설립 초기 회계기준의 적정성부터 따져보겠다고 선언하면서다. ‘고의적 분식’보다는 ‘중과실’ 또는 ‘과실’로 결론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고의 분식보다 과실에 무게"
◆쟁점 전환 ‘2012년 회계처리 적정했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의 제재 수위를 논의하는 세 번째 증선위가 20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렸다. 금융감독원 감리부서와 삼성바이오로직스뿐 아니라 외부감사인인 삼정KPMG, 딜로이트안진 등 회계법인과 바이오젠의 주식매수권(콜옵션) 평가에 관여한 신용평가사까지 ‘4자 간 대질 심문’이 이뤄졌다.

이날 증선위에는 새로운 쟁점이 도마에 올랐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2년 삼성바이오에피스 설립 당시 회계처리를 적정하게 했는지에 대해 증선위원들 질의가 있었다.

금감원은 조치안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하면서 대규모 순이익을 낸 것이 ‘고의적 분식’이라고 지적했다. 회계전문심의기구인 감리위원회도 2015년 회계처리 변경이 적정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증선위원들은 삼성바이오에피스 설립 초기인 2012년부터 2014년까지 회계처리가 옳았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2015년 회계 변경이 적정했는지, 미국 합작사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을 감사보고서에 누락한 게 공시 위반인지를 알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증선위가 논의 범위를 확대하면서 금감원은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금감원 역시 삼성바이오로직스 감리 과정에서 2012년 설립 때부터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가 아니라 관계회사로 인식했어야 했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감리 막판에 ‘고의성’ 입증을 위해 2015년 회계처리 변경 위반으로 조치안의 방향을 튼 게 전략적 패착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회사 설립 초기엔 직원 수 100명의 벤처 회사로 기초를 닦기에 바빴던 시기”라며 “수년 뒤 상장이나 삼성물산 합병 등을 예측해 회계를 조작할 만한 여건조차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회계사 등 전문가에게 조언을 받아 기준에 맞춰 적정하게 회계 처리했다는 점을 증선위에서 소명했다”고 설명했다.

◆‘과실’ 결론 나오나

국제회계기준(IFRS)의 연결기준서 제1110호(2013년부터 시행)의 전신인 1027호는 콜옵션 행사가 현재 가능하면 잠재적 의결권이 있다’고 명시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미국 합작법인 바이오젠이 언제든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잃은 것으로 보고 종속회사가 아니라 관계회사로 회계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IFRS 기준서로 보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2년부터 회계처리를 잘못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해석했다.

그럼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유리한 국면이란 분석이 나온다. 2012년 설립 초기 회계처리에 대해선 ‘고의성’을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금감원은 조치안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에 ‘고의적 분식’을 이유로 60억원의 과징금과 대표이사 해임, 검찰 고발 등 중징계를 요구했다. 만약 고의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검찰 고발과 대표이사 해임 조치를 할 수 없게 된다. ‘중과실’ 또는 ‘과실’로 결론 나면 과징금, 담당임원 해임 등으로 제재 수위가 낮춰진다. 공시 누락에 대한 고의성이 인정되더라도 ‘검찰 고발’이 아니라 ‘검찰 통보’ 수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증선위는 다음달까지 최종 결론을 내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4차 증선위는 다음달 4일로 예정돼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이날 10.24% 오른 42만원에 마감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