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6위(자산 규모 기준)인 포스코가 또다시 외풍에 흔들리고 있다. 임기가 2년이나 남은 권오준 회장이 지난 4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정권 핵심부의 외압설’이 불거진 데 이어 차기 회장 선임 작업도 정치권의 개입으로 꼬여가는 모습이다. 외국인 지분이 50%를 웃도는 민간 기업을 아직도 ‘정권의 전리품’ 따위로 여기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포스코 안팎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깜깜이 회장 인선’ 방식이 정치권 개입과 의혹 증폭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 회장을 포함한 8명의 포스코 회장 중 임기를 제대로 마친 인물이 한 명도 없어 이번에도 어김없이 ‘포스코 잔혹사’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발(發) ‘철강 관세폭탄’ 등으로 철강업계가 위기에 빠진 가운데 차기 회장 선출 작업이 난관에 부딪히면서 매출 60조원의 국내 1위, 세계 5위 철강회사 포스코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與도 野도 '개입'… 포스코 회장 선임 '판 흔드는' 정치권
후보 선정 절차 중단 요구한 정치권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20일 잇따라 차기 포스코 회장 선정 절차 중단을 요구했다. 여야 정치권이 사실상 포스코 회장 선임 과정에 공식적으로 개입하고 나선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포스코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최고경영자(CEO) 승계 카운슬’이 5명 안팎의 최종 면접 후보자를 확정키로 한 날이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는 성명을 통해 “부실 경영에 책임이 있는 사외이사들이 포스코의 혁신을 짊어져야 할 CEO를 선출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전날에도 “권오준 회장이 여전히 (차기 회장 선임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소문이 있는데, 밀실 논의를 중단하고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고 했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불투명하고 불공정한 회장 선임 절차를 중단하고 승계 카운슬을 해체하라”고 요구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있는 전남 광양이 지역구인 정인화 민주평화당 의원은 “낙하산이 아닌, 조직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내부 출신이 회장이 돼야 한다”고 거들었다.

여야 의원들은 앞다퉈 ‘포스코 마피아(포피아) 암투설’과 ‘여권 실세 개입설’ 등을 제기했지만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전직 포스코 직원이 주도하고 있는 ‘포스코 바로세우기 시민연대’ 등이 제기해온 의혹을 재탕한 주장뿐이었다. ‘포피아의 내부 암투가 있다는 제보가 많다’(권 의원),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개입하고 있다’(추 의원의 기자회견에 동석한 정민우 전 포스코 대외협력팀장)는 등 이른바 ‘찌라시(미확인 정보지)’에 등장하는 의혹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바른미래당은 지난 4일 “포스코 전 회장들이 인천의 한 호텔에서 조찬 모임을 하는데 (누군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뜻이라며 특정 인사를 포스코 회장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는 제보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회합 장소로 지목된 호텔은 조찬 모임 예약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공개 선정 방식이 논란 자초” 지적도

CEO 승계 카운슬이 후보군 명단은 물론 선정 기준도 공개하지 않아 ‘정치권 외압설’ 등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승계 카운슬은 지난 5일 “전직 포스코 임원을 포함한 외부 후보를 8명으로 압축했다”고 했다가 12일엔 “11명의 외부 후보 가운데 6명을 추렸다”고 말을 바꿨다. 심사 대상에 오른 외부 후보가 1주일 새 8명에서 11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승계 카운슬은 “외부 후보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추가 추천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포스코 주변에서는 “정권 핵심부가 미는 외부 후보가 빠져 뒤늦게 추가 후보 추천을 받은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포스코가 차기 회장 선임을 놓고 정치권의 뭇매를 맞으면서 후유증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새 회장이 선임되더라도 각종 의혹에 휩싸여 리더십이 훼손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포스코의 한 임원은 “정치권 개입설이 파다한 마당에 새 회장이 1만7000여 명에 달하는 포스코 임직원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보형/박재원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