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근로자도 주당 65시간 이상 일합니다. 어떤 해외 발주처가 주 52시간밖에 일을 못 하는 한국 건설사에 공사를 맡기겠습니까. 제2의 중동 건설 신화는 꿈도 꿀 수 없을 겁니다.”

김기영 성창E&C 사장은 19일 “다음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 국내 건설업계가 해외 건설 분야에서 ‘수주절벽’에 몰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해외업체와의 공기(工期)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김기영 성창E&C 사장은 19일 “다음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 국내 건설업계가 해외 건설 분야에서 ‘수주절벽’에 몰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해외업체와의 공기(工期)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국내 1위 석유화학·발전 플랜트 건설업체(시공능력평가 기준)인 성창E&C의 김기영 사장(71)은 19일 서울 서초동 사무소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다음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 공기(工期)를 맞출 수 없어 9개 해외현장에서 수백억원대의 지체보상금을 물어주고 직원들을 내보내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김 사장은 지난 18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주 52시간 근무제에 따른 해외 플랜트·건설업계의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는 “해외공사 수주가 급감할 게 뻔한데도 정부나 민간 협회 등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대책을 말하는 곳이 없어 답답한 마음에 호소문을 썼다”고 말했다.

◆“회사도, 근로자도 모두 불만”

김 사장은 해외 건설공사 파견 근로자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은 현장을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꼬집었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국내 산업 현장뿐 아니라 해외 사업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근로자에게도 적용된다.

"근로단축으로 工期 못맞춰… 한국 건설사에 누가 일감 주겠나"
그는 성창E&C가 하도급 업체로 참여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파드힐리 가스 플랜트 공사 현장을 사례로 들었다.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가 발주한 1억3000만달러 규모의 공사다. 스페인 테크니카스 레우니다스가 설계·조달·시공(EPC)을 맡고 성창E&C와 중국 석유화학업체 시노펙, 사우디 현지 업체 1곳이 하도급 업체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매일 10시간, 한 달에 28일 일해 주당 평균 65시간 작업을 하기로 아람코와 계약을 맺었다. 김 사장은 “원청업체부터 하도급업체 근로자까지 모두 주당 65시간 작업을 하는데 우리만 52시간 일하면 전체 공기가 늦어지게 된다”며 “진행 중인 공사만이라도 근로시간 단축제도 적용을 유예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공기를 맞추기 위해 해외 파견 근로자를 늘리면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 수주 경쟁력이 약해지고 공사 효율성도 떨어진다고 했다. 김 사장에 따르면 성창E&C가 한국인 근로자 1명을 증원하려면 월급여(1000만원·보험료 포함)와 현지생활비(500만원) 등 1500만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 80여 명의 한국인 근로자가 일하고 있는 파드힐리 현장에서 주 52시간을 지키려면 30여 명 이상을 충원해야 한다. 한 달 추가 인건비로만 4억5000만원이 필요하다. 지금도 중국 업체들보다 공사비가 20~30%가량 비싼 편인데, 인건비가 더 오르면 수주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게 김 사장의 얘기다. 그는 “한국인 근로자 추가 파견은 사우디 정부의 고용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절차도 까다롭다”며 “전문 영역이 나뉜 건설현장은 제조업 생산 라인과 달리 교대로 일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김 사장은 해외 파견 근로자의 근무 환경이 더 열악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통상 한국인 근로자들은 3~4개월가량 집중적으로 작업한 뒤 2주일가량 휴가를 받아 한국에 들어오는데, 주 52시간 체제와 현행 탄력근로제(노사 합의 때 최장 3개월 가능) 아래서는 이런 근무 방식이 불가능해진다. 그는 “근로시간이 줄어든다고 해서 사막 한가운데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길 근로자들이 있겠느냐”며 “누구를 위한 근로시간 단축이냐”고 반문했다.

◆“산업별 특수성 감안해야”

정유·화학업계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년 365일 가동하는 정유·화학 공장은 1~2년에 한 번꼴로 1개월가량의 정기보수 작업을 한다. 이 기간 근로자들은 주당 80~100시간 일한다. 국내 정유·화학 공장 건설 공사에도 참여하고 있는 김 사장은 “1년에 1개월 활용하기 위해 인력을 추가 채용하기는 힘들다”며 “정기보수 기간을 늘리면 그만큼 공장 가동 중단에 따른 손실이 불어난다”고 지적했다.

성창E&C는 국내 중견 플랜트 건설업체로는 드물게 매년 신입사원을 뽑고 있다. 올해는 16명을 채용했다. 2012년엔 ‘고용창출 100대 우수기업’으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김 사장은 “건설업체는 일감(수주)이 없으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며 “수십 년간 동고동락한 직원들도 눈에 밟히지만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입사원들은 어떻게 하느냐”며 고개를 숙였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