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노조의 파업 공세를 뚫고, 국영철도공사(SNCF) 개혁안의 의회 통과를 관철시켜 다시 한번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84년 당시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광산노조의 장기파업을 무릅쓰고 석탄산업 구조조정을 이뤄 노(老)제국을 부활시킨 것에 비견될 정도의 성과라는 게 외신들의 평가다.

개혁안은 국영철도공사를 합자회사로 전환하고 종신고용, 조기퇴직 시 연금 지급, 직원 가족 무료승차 등 과잉 처우를 신입사원부터 폐지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 직원의 복지는 인정하되 새로 채용하는 직원부터는 다른 조건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프랑스 철도공사는 만성 적자기업이다. 부채도 470억유로(약 60조원)나 된다. 그런데도 지난 수십 년간 프랑스 임금이 평균 1.5% 오를 때 SNCF 소속 노동자는 2.4% 오를 정도로 복지 혜택은 강화돼왔다. 역대 정부가 수차례 SNCF 개혁을 시도했지만 강성 노조에 막혀 번번이 실패했다. 결국 신입사원부터라도 혜택을 없애 일자리라도 늘리자는 개혁안이 해법으로 제시된 것이다. 기존 직원들은 보장된 혜택을 누릴 수 있어 크게 반발하지 않았고, 파업 강도도 약할 수밖에 없었다. 야당 의원들까지 개혁안에 찬성표를 던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다.

이 같은 마크롱의 개혁은 강력한 노조의 기득권에 부닥쳐 노동개혁을 엄두도 못 내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많은 대기업이 정규직 과보호와 경직된 고용제도, 과도한 복지 혜택 등으로 인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한국GM 등이 사실상의 부도 상태에 빠졌던 것도 시장환경 변화 등 대외 요인 외에, 해외 경쟁기업들보다 현저히 높은 임금과 고용 경직성 때문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치권도 문제를 잘 알고 있으면서 노조 기득권을 없앨 해법을 모색하기는커녕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 급급했다. 권력이 된 노조는 고용세습, 채용장사 등과 같은 전근대적 관행을 유지할 정도로 기득권을 강화한 반면 미취업 청년, 비정규직·파견직 근로자 등 약자들의 고통은 커졌다. 현 정부 들어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전체 노동자의 10%에 불과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 끌려가며, 정부가 대화를 구걸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차선책이지만 마크롱식 ‘기존 직원-신입 직원 분리적용’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세대 간 갈등, 조직 내 위화감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근로자가 자신의 근로조건을 선택해 취업할 수 있는 ‘개별 근로계약’ 등 정교한 보완책을 마련한다면 ‘전면적 노동개혁’보다 성사 가능성이 큰 게 사실이다. 마크롱의 개혁 성공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요즘 논의되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도 크게 보면 기존 근로자의 기득권과 별도로 새로운 고용 관계를 창출하자는 것이다. 대기업 노조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더욱 유연하고 자유로운 고용 관행을 구축할 수 있다면 기업의 경쟁력 강화는 물론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늘리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프랑스도 하는데 우리가 못 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