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기업 사냥꾼과 싸우려면
대표적인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또 한 번 힘을 과시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노력을 일거에 무산시켰다. 한국 기업이 더 이상 헤지펀드의 ‘기업 사냥’에서 자유롭지 않음이 확인되는 진실의 순간이었다.

행동주의 펀드는 주가가 낮거나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을 타깃으로 삼는다. 폴 싱어, 칼 아이칸, 빌 애크먼, 넬슨 펠츠 등이 대표적인 행동주의 투자자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경영권 승계를 추진했지만 싱어가 이끄는 엘리엇의 도전에 주총 ‘표 대결’도 포기한 채 주저앉았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지배구조 개편안을 보완하겠다고 한발짝 물러섰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도 엘리엇의 반대를 물리치고 성사됐지만 적잖은 후유증을 남겼다. 최근에는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함으로써 피해를 입었다고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까지 제기하고 있다. 2006년 KT&G의 2대 주주로 올라선 아이칸은 배당 강화, 상장, 유휴자산 처분 등을 요구해 회사 측과 크게 갈등을 빚기도 했다.

독수리처럼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물어뜯어 ‘벌처펀드’로도 불리는 헤지펀드는 주가 상승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기업의 펀더멘털에는 관심이 없어 기업 가치를 크게 훼손한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2009년 이후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대 기업의 15%가 공격을 받았다. 2005~2015년 미국 기업은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막는 데 7조달러를 지출했다. 최근에는 아시아와 유럽 지역 활동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애플은 펀드의 압력에 못 이겨 1분기 228억달러 자사주를 매입했고 1000억달러 추가 매입 계획을 발표했다. 배당금도 16% 인상했다. 지난 5년간 자사주 매입과 배당 등으로 2752억달러를 지출했다.

아이칸은 차입매수(LBO)를 이용한 인수합병(M&A)으로 냉혹한 ‘기업 사냥꾼’ 명성을 획득했다. 행동주의 투자자의 원조로 불린다. 공격적 주식 매입과 분할 매각이 장기다. 1985년 대형 항공사인 트랜스월드항공(TWA) 인수 및 매각으로 큰돈을 벌었다. 자산 340억달러를 운영하는 싱어는 작년 19개 기업에 투자해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 2001년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아르헨티나 국채를 헐값에 매입해 대박이 났다. 애크먼은 퍼싱스퀘어캐피털의 최고경영자로 2004~2014년 116억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창출했다. 2014년 ‘세계의 톱20 헤지펀드 매니저’로 선정됐다. 트라이언매니지먼트의 펠츠는 생활용품업체 프록터앤드갬블(P&G) 지분을 매입해 조직 축소, 비용 삭감 등을 놓고 경영진과 기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외국인에 대한 배당 지급액이 사상 최대인 75억7000만달러에 이르렀다. 주주친화 경영 강화라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외국인 주주를 의식한 배당 전략의 성격이 강하다. 외국인 지분이 절반에 달하는 상황에서 기업의 경영 안정성은 취약한 형편이다.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 따른 ‘연금사회주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276개 기업에 대해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주주권 행사 강화는 맞는 방향이지만 연금 운용의 독립성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

경영권 안정 장치로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등이 제안되고 있다. 차등의결권은 구글, 페이스북 등 기술기업뿐 아니라 뉴욕타임스, 포드 등 유력 기업에서도 활용된다. 경영권 안정을 바탕으로 연구개발 투자 및 M&A를 통해 성장동력을 창출한다는 장점이 있다. 구글의 문샷 프로젝트는 경영권 안정 없이는 시도할 수 없는 장기 투자다. 그러나 입장 차이가 커 벤처기업에 한해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방안이 검토되는 상황이다. 적대적 M&A 때 주주에게 저가로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하는 포이즌필은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외국처럼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투자자 보호장치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경영권 안정과 투자자 보호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장난감 업체 토이저러스가 헤지펀드 인수에 따른 과다 차입으로 파산한 것은 주주행동주의의 민낯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