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회사 넥슨의 창업자인 김정주 NXC(넥슨의 지주회사) 대표(사진)가 자녀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재산 중 1000억원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사회에 진 빚 갚겠다는 김정주 NXC 대표 "1000억 사회환원… 자녀 경영승계 없다"
김 대표는 29일 이메일로 언론에 이 같은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는 “지난 2년여간 넥슨 주식사건과 관련해 수사와 재판을 받았고 이달 19일 판결이 확정됐다”며 “1심 법정에서 ‘재판 결과에 상관없이 앞으로 사회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되갚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라고 약속드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5년 고교 동창인 진경준 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본부장(검사장급)에게 넥슨의 비상장 주식 4억2500만원어치와 여행 경비 등을 무상으로 제공한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 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에서 무죄확정 판결을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넥슨을 게임업체 처음으로 준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 것도 이날 발표의 한 배경이다. 넥슨은 지난해 자산 규모 5조원이 넘어서면서 공정위의 각종 대기업집단 규제를 받았다.

김 대표는 “1994년 컴퓨터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창업한 조그만 회사가 재판받는 중에 자산총액 5조원을 넘어서는 준대기업으로 지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지난 20여 년 동안 함께 일해온 수많은 동료의 도전과 열정의 결과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배려 속에서 같이 성장해왔다는 점 또한 잘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넥슨을 앞으로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그는 유정현 NXC 감사와의 사이에 미성년자인 두 딸을 뒀다. 그는 “아이들에게 회사의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며 “이는 회사를 세웠을 때부터 한 번도 흔들림 없었던 생각이었지만 공개적인 약속이 성실한 실행을 이끈다는 다짐으로 약속드린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2000년대 중반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유망 게임업체 인수합병(M&A)에 주력해왔다. 최근에는 넥슨의 게임업체 투자에도 거의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국내외 5000여 명의 구성원과 함께하는 기업의 대표로서 더욱 큰 사회적 책무를 느끼게 됐다”며 “넥슨이 성장한 데에는 직원들의 열정과 투명하고 수평적인 문화가 큰 역할을 했고, 이런 문화가 유지돼야 회사가 계속 혁신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발표로 넥슨의 전문경영인 체제는 강화될 전망이다. 넥슨코리아의 이정헌 대표와 정상원 신규개발총괄 부사장은 지난달 기자 간담회에서 “넥슨은 (창업주가 대표를 유지하는) 다른 회사와 달리 김정주 대표가 일선에서 빠지면서 경영진이 자주 바뀌고 색깔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개발자와 사업가 출신 대표가 번갈아 임명됐지만 다양성과 재미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회사의 방향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김 대표는 사회에 환원할 개인 재산의 사용처도 밝혔다. 그는 “현재 서울에만 있는 어린이재활병원이 전국 주요 권역에 설립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넥슨이 220억원을 지원해 설립된 서울 마포구의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김 대표는 “청년들의 벤처창업투자 지원 등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들로 기부를 늘려 나가겠다”며 “앞으로 전문가를 모시고 투명한 준비 과정을 거친 뒤 조속한 시일 내에 기부 규모와 방식, 운영 주체와 활동 계획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겠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향후 게임보다는 ‘다음 세대, 미래 사업’이라는 개인적인 관심 영역에 진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는 NXC를 통해 2013년 유럽의 유모차 제작업체인 스토케 인수를 시작으로 가상화폐거래소 코빗, 고급 사료업체 아그라스 등을 사들였다. 북미와 유럽지역 벤처투자펀드를 활용해 미래 먹거리, 달 탐사, 공유경제 관련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도 투자하고 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