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달 12일로 예정됐던 미·북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데 따른 충격파가 세계를 강타했다. 판이 완전히 깨진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게 불투명해졌다. 북한은 곧바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통해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어갈 용의가 있다”며 유화 제스처를 보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건설적인 대화와 행동에 나설 때까지 역대 가장 강력한 제재와 최대한 압박 작전을 이어가겠다”고 천명했다.

77일 전 미·북 정상회담이 처음 거론됐을 때보다 오히려 상황이 악화됐다. 미국 조야에선 회담 재개 예상이 나오는 한편, 군사옵션 가능성도 공공연히 거론되는 판국이다. 한마디로 예측 불허다. 이 지경이 된 데는 김정은의 두 차례 방중(訪中) 이후 북한이 강경노선으로 급선회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중국이 제재·압박에 허덕이는 북한에 뒷문을 열어준 듯한 정황도 포착됐다. ‘믿는 구석’이 생긴 북한은 늘 그랬듯이, 김계관·최선희를 통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펜스 부통령을 맹비난하고 회담 불발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분노와 적대감’을 빌미로 “소득 없는 회담은 하지 않겠다”고 맞받아쳤다. 발표시점도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소식이 전해진 직후다. ‘비핵화 위장쇼’에 대한 경고로도 읽힌다. 결국 북한은 역대 미국 대통령과는 전혀 딴판인 ‘협상의 달인’을 상대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한국에는 먹혔던 북한의 ‘책략’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은 것이다.

상황을 오판한 것은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사흘 전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의지를 의심할 필요가 없다”(문재인 대통령), “회담 가능성은 99.9%”(정의용 안보실장)라고 장담했던 게 참으로 부끄럽게 됐다. 불과 하루 뒤 미·북 회담 취소를 전혀 간파하지 못했을 정도로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철저히 배제됐다는 사실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미국은 완전 비핵화에 주력하는데, 한국은 북한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에 방점을 찍으며 엇박자를 낸 것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서한에서 “북한이 회담을 원한다고 전해들었다”고 언급한 것은 한국 정부에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미국에 대놓고 무시당하고, 김정은에게는 ‘풍계리 취재’로 농락당했다. 그러면서도 남북경협이 곧 성사될 듯이 김칫국부터 마셨다. “노벨상은 트럼프, 우리는 평화” 식의 어설펐던 접근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 거대 포커판과도 같은 냉혹한 한반도 정세에서 국가 대응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