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통화위기가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등이 긴급 금리 인상 조치에 나섰지만 한 달 넘게 이어진 신흥국 통화가치 하락세가 진정되지 않고 있어서다.

신흥국 통화 위기… 출구가 안 보인다
20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JP모간의 신흥시장 통화지수(EMCI)는 지난 18일 66.17로 마감해 신흥국 통화위기가 불거진 지난달 16일 이후 한 달여 만에 5.6% 떨어졌다. 2013년 5월 벤 버냉키 당시 미 중앙은행(Fed) 의장의 양적완화 종료 발언이 촉발한 자금 이탈, 이른바 ‘긴축 발작(taper tantrum)’ 이후 한 달여 기간의 하락 폭(4.1%)을 넘는 수준이다.

인도네시아는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17일 기준금리(7일물 역리포금리)를 기존 연 4.25%에서 연 4.50%로 0.25%포인트 올렸음에도 다음날 환율이 전날 달러당 1만4058루피아에서 1만4156루피아로 오히려 치솟았다.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통화가치 하락으로 인한 구조적 위기가 신흥국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위기가 현실화하지 않았지만 부채비율 등을 고려하면 상황이 악화할 가능성이 높은 신흥국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분석업체인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신흥국 중 가장 취약한 나라로 터키 브라질 칠레를 꼽았으며, 이들 3개국을 포함한 위험군에는 말레이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추가했다. 말레이시아 링깃화 환율은 지난달 초 달러당 3.86링깃에서 이달 18일 3.97링깃까지 올랐다.

로빈 브룩스 국제금융협회(II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사태의 진앙인 아르헨티나의 통화가치 폭락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앞으로 닥칠 일들의 전조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글로벌 금리 상승 폭이 2013년의 절반에 불과한데도 많은 신흥시장 통화가 훨씬 더 약해진 것은 각국 경제의 취약성이 높아졌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많은 신흥국이 부채비율 관리에 실패하면서 부채가 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