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경제부총리
김동연 경제부총리
“경기 회복세다”(기획재정부)→“침체 국면 초입이다”(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월별 통계만 가지고 경기를 봐선 안 된다”(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통계는 구조적 현상의 결과다”(김 부의장).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팀 수장과 대통령의 경제자문을 맡은 참모가 경기 해석을 놓고 충돌했다. 김 부의장이 경기 회복 국면이라는 기재부 발표에 맞서 “국내 경기가 침체 국면에 들어섰다”고 주장하자 김 부총리가 17일 이를 반박했고, 김 부의장이 재반박하며 논쟁을 키우고 있다.

관가에서는 올 들어 고용 상황이 크게 악화되고 산업지표가 흔들리는 등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자 정부 내에서도 의견 균열이 생기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저임금 영향을 놓고 시각차를 드러낸 김 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갈등도 이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책 혼선이 우려된다”는 시각이 있지만 “경제정책 기조 변화 여부를 놓고 바람직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의견도 많다.

“정책 능동적으로 운용할 의지 있나”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경제정책 논쟁에 불을 지핀 사람은 김 부의장이다. 김 부의장은 그동안 본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이나 외부 강연 등을 통해 정부의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이나 과도한 기업 규제를 우려하는 의견을 나타내왔다.

지난 4월29일 페이스북에 “이제부터는 기업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투자를 하고, 공직자들이 능동적으로 일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며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나 부처 내 과도한 적폐청산 움직임에 비판적 의견을 냈다. 지난 7일엔 소득주도성장론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이제 1년이 지난 만큼 정책 전환의 시점이 됐다”며 “경제적 효율성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세계경제의 미래 흐름에 동승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11일 기재부가 경제동향(그린북) 5월호에서 고용 및 산업동향 부진에도 “경기는 회복 흐름”이라는 판단을 내놓자 작심한 듯 팔을 걷어붙였다. 다음날 “(경기 회복 국면이라는 기재부 발표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글을 남겼고 14일엔 “여러 지표로 봤을 때 경기는 오히려 침체 국면 초입 단계에 있다고 본다”고 썼다.

기재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김 부의장의 말에 이번엔 김 부총리가 정색했다. 17일 경제관계장관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경제계 원로로서 좋은 말씀을 해줬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경제 상황을 최근 통계를 갖고, 특히 월별 통계를 갖고 판단하기엔 성급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월별 통계가 중요한 게 아니고 추세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산업동향은 광공업생산을 빼놓고는 추세상 나쁜 흐름을 보이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김 부의장이 즉각 반박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현재 눈에 보이는 통계적 현상은 경제가 구조적으로 잘못돼 가고 있는 상황의 결과”라며 “이런 구조가 지속되는 한 통계적 현상이 개선되기 어렵고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김 부의장은 여기에 “경제정책을 능동적으로 기획하고 열정적으로 운용하려는 의지가 공무원 사회에 있는가?”라며 공무원의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도 더했다.

경기 둘러싼 논쟁 확대되나

경제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두 사람뿐만이 아니다. 정부 고위관계자들 간 의견 차이는 최근 곳곳에서 불거지는 양상이다. 김 부의장은 청와대 경제 참모들과도 뚜렷한 시각차를 나타냈다.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청와대 참모들이 자꾸 실물 지표에 대해 방어적, 수세적으로 나오는 것은 문제를 종합적으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기 때문”이라며 “엊그제 장하성 실장이 국책 연구기관의 보고서를 인용해 ‘최근 고용지표 부진은 최저임금과 관련없다’고 말했는데, 보고서의 분석 내용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앞서 16일 김 부총리도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과 임금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장 실장과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최저임금과 관련해서는 김 부총리와 김 부의장이 장 실장에게 맞서 같은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7일 열린 임지원 금융통화위원 취임식에서 “대내외 여건이 만만치 않아 앞으로 경제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고 불확실성이 높다”며 김 부총리와 다른 의견을 나타내기도 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