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5일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기조강연을 한 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기웅 한국경제신문 사장,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박 장관,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이학영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5일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기조강연을 한 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기웅 한국경제신문 사장,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박 장관,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이학영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5일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을 처음으로 밝혔다. ‘쥐꼬리만 한 연금을 주면서 국민 부담만 늘리는 것 아니냐’는 인식 탓에 그동안 누구도 보험료 인상 얘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주무부처 수장으로서 소신을 밝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지침)’를 도입해 기업을 옥죄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는 최근 사례까지 공개하며 “그럴 일이 없다”고 못 박았다. “말보다 실적으로 보여주겠다”고 약속도 했다.

박 장관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재원 조달 방안도 다시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건강보험 적립금을 최대한 덜 쓰는 방안을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이 역시 보험료 인상이 필요한 일이다. 정부는 그동안 건강보험 적립금 20조원 중 10조원만 헐어 쓰는 것이어서 재정에 별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왔다.

[한경 밀레니엄포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국민연금 고갈 앞당겨져… 보험료 인상 논의 피하지 않겠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국민연금 3차 재정추계 때 적립금이 2060년 소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올해 4차 재정추계를 하고 있는데, 소진 시점이 당겨지든 그대로든 2060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국민연금 고갈 시점을 늦추려면 원론적으로 보험료를 올리거나 보장률을 낮춰야 하는데, 보장률이 이미 상당히 낮아 정부는 오히려 이를 강화하려고 한다. 결국 보험료를 높이는 게 자연스러운데, 정치권은 그동안 국민이 이를 반대할 것으로 보고 계속 미뤄왔다. 문제는 언제부터냐다.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면서 적정 인상폭이 어느 정도인지 논의하는 작업은 언젠가 시작해야 한다. 장관 재임 중 시작돼도 두려워하지 않겠다. 적극 논의하겠다.

▷김 교수=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주주로 있는 기업에 대한 의결권을 적극 행사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 기업의 취약한 지배구조를 감안하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기업 지배구조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기업 현실을 보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

▷박 장관=연금사회주의란 얘기까지 나오는데,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금의 투명한 운영을 통해 장기 수익성을 높이는 게 목적이다. 최근에도 특정 기업의 임원 선임 안건과 관련해 일절 관여하지 말고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결정 그대로 하라고 했다. 관심도 갖지 말라고 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로 개별 기업 지배구조에 간섭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들이 격론을 벌이고,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객관적 환경 보장에만 최대한 노력하겠다. 말보다 실적으로 평가받겠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문재인 케어’)를 위해 5년간 30조원을 쓰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건강보험 적립금(20조원)을 헐어 특실(1~3인)까지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고 했는데, 이건 정책 이탈이다.

▷박 장관=적립금 20조원을 다 헐어 쓰는 것은 아니고 5년간 10조원 정도를 쓴다. 다만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에 대한 국민 신뢰를 위해 보험료를 높이든지, 의료비를 절감하든지 하는 방식으로 2~3년 뒤 (적립금 쓰는 것을) 멈추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무턱대고 10조원을 다 쓰겠다는 것이 아니다.

▷조 교수=정부는 보건산업 일자리 수와 수출액을 늘리겠다고 했는데, 복지부 적폐청산위원회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서 보건의료 분야는 제외하라고 했다. 규제 철폐 없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박 장관=보건산업 규제와 관련해선 특히 개인정보 보호를 두고 엄청나게 대립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개인정보 보호가 더 중요하다는 시각이 많았지만 인공지능(AI)이 등장하고, 빅데이터 구축이 일반화하면서 국민의 의식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복지부 공무원들에게 개인정보 문제와 관련해 보호하겠다고만 하지 말고 어떻게 개인정보를 활용할 것인지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은행 재무제표를 보면 화폐 발행 부채가 작년 말 108조원에 이르렀다. 2012년 말 54조원에서 두 배로 늘었다. 국가장학금 등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갖고 있던 예금을 인출해 집에다 보관하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소득 파악이 제대로 안 되니 복지 의존성이 더 커지고 있다.

▷박 장관=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전에 소득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겠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정부가 저출산 대책의 포커스를 보육 지원 중심에서 일·생활 균형 지원으로 바꾸겠다고 하는데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저출산 예산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박 장관=기존 대책과는 상당히 다르게 준비하고 있다. 일·생활 균형이 가능하려면 출퇴근 등 근무 여건을 모두 바꿔야 한다. 청년, 신혼부부 주거 지원 등을 위한 예산도 많이 소요될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저출산 문제에 적극 나서겠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협업하고 있다. 5월에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장=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바이오헬스 분야가 가장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규제가 바이오헬스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특히 생명윤리법 규제로 인해 ‘유전자 가위’ 기술 활용이 막혀 있다. 아직도 ‘황우석 영향’이 남아 있나.

▷박 장관=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결정하고 있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생명윤리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고 있다고 본다. 시대 흐름에 맞게 규제가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생명윤리 자체가 유동적이다. 적어도 연구 단계에선 규제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복지는 성장의 과실이다. 저성장 시대가 되면서 복지도 이에 맞춰야 한다. 복지를 계속 늘릴 경우 근로의욕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핀란드의 기본소득보장 실험도 실패로 돌아갔다.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박 장관=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는 영역별로 다르게 적용돼야 한다. 예컨대 기초생활보장은 선별적, 건강보험은 보편적이다. 우리는 아직 기본소득제를 도입할 여건이 성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에 따라 점차 돈을 버는 사람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소수만 돈을 버는 시대가 온다는 말이다. 이 경우 자원 배분의 수단으로 기본소득제가 필요하다. 지금은 빠르지만, 미래 생산구조를 보면 도입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아예 인구 문제를 전담하는 인구 부처를 설립해야 하는 것 아닌가. 출산 가정에 대한 인센티브, 출산하지 않은 가정에 대한 불이익도 필요하다.

▷박 장관=인구 부처를 신설하더라도 업무 상당 부분은 복지부와 겹칠 것이다. 언젠가 신설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전까진 부처 간 협업을 통해 인구 문제에 대응하겠다. 출산을 통한 사회적 기여에 대해 아파트 분양, 어린이집 추첨 등에서 혜택을 주고 있다. 다소 미진한 것은 사실이다. 더 적극적으로 하겠다.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올해 보건복지 분야 예산은 12.9% 증가했지만,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20% 깎였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과잉진료와 의료쇼핑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복지 예산이 더 늘어나야 할 텐데, 국가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박 장관=앞으로 복지재정에서 가장 큰 걱정이 의료비 지출 증가다. 복지지출의 가장 가변적 요소다. 의료비 지출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를 얼마나 줄이느냐에 따라 복지지출 통제 가능 여부가 달렸다. 지금은 복지지출 비중이 선진국의 절반 수준이지만, 20년 뒤엔 선진국 평균에 도달할 것이다. 의료 수요를 충족하면서도 통제 가능한 범위 내로 묶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마련 중이다. 복지시설 대신 지역사회가 함께 취약계층을 돌보는 ‘커뮤니티 케어’도 이의 일환에서 추진하고 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