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너무나 - 박라연(1951~)

[이 아침의 시] 아름다운 너무나 - 박라연(1951~)
우리가
누린 적 있는 눈부신 시간들은

잠시 걸친
옷이나 구두, 가방이었을 것이나

눈부신
만큼 또 어쩔 수 없이 아팠을 것이나

한번쯤은
남루를 가릴 병풍이기도 했을 것이나

주인을 따라 늙어
이제
젊은 누구의 몸과 옷과
구두와 가방
아픔이 되었을 것이나

그 세월 사이로
새와 나비, 벌레의 시간을
날게 하거나 노래하게 하면서

이제 그 시간들마저
허락도
없이 데려가는 중일 것이나

시집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창비)


한때는 눈부신, 그런 젊은 순간들이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잠시 걸친 옷이나 구두, 가방, 한번쯤은 남루를 가릴 병풍이기도 했을, 어쩔 수 없이 아팠을 것이기도 했을 찰나의 시간들. 주인인 우리를 따라 어느새 늙었지만 아름답다고 긍정할 수밖에요. 여기서 이렇게 사람으로 태어나 자라고 늙으며 한세월 잘 살다 가는 일. 시간이 우리의 눈부신 한때를 허락도 없이 데려간대도 아름다운, 너무나 아름다운 시간이라고 읊을 수밖에요.

김민율 < 시인(2015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