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정상회담을 닷새 앞둔 22일 경기 파주 임진각 전망대에서 관광객들이 북녘땅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한 정상회담을 닷새 앞둔 22일 경기 파주 임진각 전망대에서 관광객들이 북녘땅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일 ‘북한이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중지하고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폐기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북한과 전 세계에 매우 좋은 뉴스로 큰 진전”이라고 환영했다. “우리의 정상회담을 고대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22일에는 “미국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고, 북한과 관련한 결론을 도출하기까지 아직 먼 길이 남아 있다”고 북한을 압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놀라운 발표”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과거에 많이 본 소극(parse)”이라거나 “비핵화가 아니라 핵 보유국 선언일 뿐”이라는 신중론도 적지 않았다.
트럼프 "北에 아무것도 양보 안해… 결론까진 먼 길" CVID 계속 압박
◆기대 내비치는 美 행정부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북한 발표가 나오자 환영 메시지를 띄운 데 이어 다섯 시간 뒤인 밤 12시 무렵에도 다시 큰 기대를 나타냈다. 그는 트위터에 “북한은 핵실험과 ICBM 발사를 멈출 것이며, 핵실험 중단 서약을 증명하기 위해 북한 북쪽의 핵 실험장을 폐쇄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으로부터 받았다”고 썼다. “모두를 위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그는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최측근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국무장관 내정자)이 방북해 김 위원장을 만난 뒤부터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 18일 미·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엔 “미·북 정상회담 성공을 위해 뭐든 다하겠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22일 ‘미국만 북한에 많이 내줬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나오자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합의가 완료되기까지 가야 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북한을 압박한 것이다. 그는 또 “일이 잘 풀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시간만이 말해 줄 수 있다”고도 했다.

◆美 언론·전문가 의견은 갈려

진보 성향인 워싱턴포스트(WP)는 북한 선언을 “놀라운 발표”라고 규정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신중론을 폈다. 이 신문은 “어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핵무기를 포기할 의도가 없으며, 국제사회의 제재를 완화하고 시간을 벌려고 협상을 활용하기를 원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김 위원장이 안전 보장 등의 보상이 주어지면 결국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말한다”고 엇갈리는 의견을 모두 다뤘다.

미국 내 대북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국방부 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를 지낸 에이브러햄 덴마크 우드로윌슨센터 아시아센터 국장은 트위터에 “분명히 긍정적 시그널이지만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는 아니다”며 “비핵화에 대해 한마디도 없었고 이런 선언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고 적었다.

지난해 말 주한미국대사에 내정됐다가 낙마한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21일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실험 금지와 선(先)사용 금지 등 책임 있는 핵 보유국의 측면을 보여주려고 했다”며 “비핵화 선언을 한 게 아니라 핵무기 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을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북 압박은 지속 방침

미 정부는 북한 비핵화가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날 때까지 대북 압박과 제재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미 국무부는 이날 발표한 ‘2017 국가별 인권사례보고서’에서 북한을 중국 러시아 이란과 함께 자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국가로 지정하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집단’이라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북한을 ‘김씨 가문이 60년 넘게 이끌어 온 독재 국가’로 규정하고 “거의 모든 보고 대상 분야에서 북한 국민은 지독한 인권침해에 직면했다”고 강력한 어조로 비난했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인 38노스의 조지프 버뮤데스 선임분석관은 WSJ에 “김정은은 놀라울 만큼 국제적으로 언론 플레이를 잘하고 있다”며 “미·북 정상회담이 성공하지 않을 경우 비난이 미국에 쏠리게 하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