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1일 핵동결 조치를 선언하면서 나흘 앞으로 다가온 4·27 남북한 정상회담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공동선언한다는 목표에 한발 다가섰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북한이 선제적 협상카드를 꺼내면서 남·북·미 3국 간 비핵화 협상의 공간이 넓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남북 정상회담 성공에 ‘청신호’

청와대는 21일 북한의 핵중단 선언이 나온 직후 공식 논평을 내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청와대는 “북한의 결정은 세계가 염원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의미있는 진전”이라며 “남북, 북·미 정상회담 성공을 위한 매우 긍정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靑 "남·북·미 협상 공간 넓어져"… 남북회담서 '비핵화 공동선언' 추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첫 정상회담은 비핵화와 이를 기반으로 한 평화 체제 전환 등 북·미 정상 간 핵담판에 앞선 사전 정지협상의 성격이 짙다. 미국을 포함해 비핵화 협상의 3국 정상이 긍정적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낙관론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종전협상을 처음 거론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을 거두도록 가능한 모든 일을 하겠다”고 한 데 이어 북한의 핵중단 선언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매우 좋은 뉴스”라는 글을 띄웠다.

문 대통령도 언론사 사장단 간담회에서 “비핵화 개념에 차이가 없다”며 “북한은 국제사회에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우리에게 적극적인 대화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등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지도 않고 오로지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 종식과 안전보장을 말할 뿐이란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4·27 정상회담 공식의제로 정전협상을 논의하겠다고 밝혔고,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정전협상의 최우선 당사자가 남한”이라고 밝힌 것도 북·미 회담 중재 역할을 떠나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작동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비핵화 협상의 ‘입구’로 평가되는 핵실험장 폐기와 핵실험 중단에 이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중단으로 미국 본토 위협이 제거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김 위원장과 비핵화 담판을 지을 환경이 조성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文·金 첫 대면…核담판 물꼬 틀까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역사적인 첫 대면은 ‘한반도 비핵화’란 대장정의 ‘출발점’에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북 정상이 종전(終戰) 선언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 주요 의제인 비핵화 로드맵에 합의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길을 틀 수 있을지에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비핵화 및 종전에 대한 큰 틀의 합의를 선언 형식으로 천명한 뒤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를 구체화하고, 남·북·미 정상회의에서 최종 선언을 하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이 비핵화를 선언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을 것”이라며 “북한 최고지도자가 문서 형태로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한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미 3자 회의에 그치지 않고 오는 6월까지 중국 러시아 일본 등과 숨가쁜 정상외교 스케줄을 잡아놓고 있다. 비핵화 로드맵을 실행하기 위해선 주변국 협조와 지지가 절대적인 데다 비핵화로 가는 각 단계에서 ‘행동과 보상’에 대한 북·미 간 ‘액션플랜’에 장애가 될 외부 변수를 사전에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실험 중단 등 선제적 조치로 첫단추를 끼웠지만 비핵화의 구체적 방법론을 놓고 북·미 간극을 어떻게 좁히느냐가 정상회담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으로 불리는 일괄타결 프로세스를 강조하면서 ‘비핵화 이전에는 보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를 모토로 세분화한 비핵화 단계와 그에 따른 보상을 추구하고 있다.

비핵화 협상 입구에서부터 정상 간 만남을 통해 ‘톱다운(top-down)’ 방식을 차용했다는 점에서 구속력을 갖췄다는 평가도 있지만 동시에 실행 과정에서 험로가 예상된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내다보면서도 ‘디테일의 악마’를 넘어서는 게 과제라고 우려를 나타낸 이유다.

전문가들은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면서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북·미 간 ‘교집합’을 어떻게 넓히느냐가 북·미 정상 간 핵담판의 성공을 가늠하는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