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민펀드’로 키우겠다며 소득공제와 공모주 우선 배정 등 혜택을 부여한 코스닥 벤처펀드가 취지와 달리 ‘부자펀드’로 변질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펀드 출시 보름 만에 1조3000억원이 넘는 자금이 몰렸지만 최소 가입금액 1억원 이상인 사모펀드로의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애초 기대만큼 코스닥시장으로 돈이 흘러가지도 않고 있다. 사모펀드는 공모펀드와 달리 비상장 주식이나 코스닥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같은 메자닌에 집중 투자하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은 코스닥 벤처펀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보완책 마련에 나섰다.
'국민펀드' 라더니… '부자펀드'로 변질된 코스닥 벤처펀드
◆사모자금 1조원, 코스닥에 안 풀려

22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코스닥 벤처펀드 가입금액은 1조3195억원(18일 기준)으로 집계됐다. 사모펀드 유입자금은 9967억원으로 공모펀드(3228억원)의 3배가 넘는다. 사모펀드는 99개(운용사 50곳)에 달하는 반면 공모펀드는 7개(운용사 7곳)에 불과하다.

대부분 사모펀드로 자금이 유입된 탓에 시장으로 돈이 풀리지 않고 있다. 펀드가 출시된 지난 5일 이후 20일까지 코스닥시장에서 투신권은 772억원어치 순매수했지만 사모펀드는 오히려 884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이 기간에 코스닥지수가 2.3% 오른 것은 개인과 외국인이 각각 2168억원, 564억원어치 순매수한 영향이 컸다. 펀드 투자금의 절반을 혁신·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코스닥 벤처펀드가 코스닥지수 상승의 첨병 역할을 할 것이란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큰손’ 고객이 많은 사모펀드는 변동성이 큰 코스닥 주식보다 주식과 채권의 중간 성격인 메자닌에 투자하려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살 만한 코스닥 주식이 대부분 많이 오른 상태라는 점도 사모펀드가 주식 매수를 주저하는 이유다. 한 헤지펀드 운용사 대표는 “코스닥 벤처펀드가 나오면 자금이 유입될 것이란 기대로 미리 주식을 매수한 투자자가 많아 살 만한 주식은 대부분 상당히 올랐다”며 “이달은 아직 공모주 수요예측 일정이 없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주식 비중을 채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헤지펀드 운용사 대표는 “코스닥 벤처펀드 자금의 절반을 주식이 아니라 메자닌으로 전부 채워도 공모주 우선 배정과 소득공제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다”며 “모든 펀드가 코스닥 주식을 35% 이상 채울 것으로 가정하고 기계적인 자금 유입을 예상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고민 커진 정책당국

같은 코스닥 벤처펀드라도 공모펀드는 사모와 운용 방식이 크게 다르다. 대부분 무등급 채권인 코스닥 CB나 BW를 편입할 수 없다. 금융위원회 금융투자업 규정에 따라 공모펀드는 편입 채권에 대해 최소 2곳 이상의 신용평가사에서 신용등급을 받아야 한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규정이지만 펀드 운용사엔 규제로 받아들여진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공모형 코스닥 벤처펀드는 원금이 보장되는 CB나 BW를 담을 수 없어 고위험 고수익을 노린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며 “사모펀드와 역차별이란 지적이 많아 관련 규제를 예외적으로 풀어달라는 업계 건의를 금융위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정책당국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운용사 자체 컴플라이언스에서도 투자자 보호를 위해 코스닥 CB, BW 편입에 제약을 두고 있다”며 “규정에서 예외적으로 무등급 채권을 편입할 수 있도록 하더라도 펀드 환매에 대응한 유동성 확보 등을 고려할 때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어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코스닥 벤처펀드의 취지를 살리려면 공모펀드의 매력을 더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운용사 대표는 “공모펀드와 사모펀드의 공모주 우선 배정 비율이나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한 운용 규제 등에 차이를 두는 식으로 공모펀드의 장점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진형/나수지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