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환익 칼럼] 지역 균형발전, 초심으로 돌아가야
역대 어느 정부도 지방을 걱정하지 않고 지역 간 균형발전을 위해 무언가 나름대로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정부는 없다. 그 결과 도로망이 지역 구석구석 깔리고, 기초자치단체마다 산업단지 한두 개는 다 있고, 특화산업이나 개발계획에 대한 투자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각종 혁신센터와 산학연 클러스터도 무수히 시도됐다. 공공기관 이전도 대체로 완료됐다. 그러나 일부 지역을 빼놓고는 특별한 발전을 체감하기 힘들고 오히려 미래의 전망은 더욱 답답해지고 있다.

수년 전 발표된 일본의 ‘마스다 보고서’에 의하면 일본에서 인구 감소 속도는 일자리가 부족하고 미래가 안 보이는 지방이 더 빨랐다. 주민이 대도시로 떠난 지방은 의료와 교육시설이 줄어들고 이는 젊은 층을 더 떠나게 하고 결국 지방 소멸로 간다는 것이다. 또 대도시는 인구 과밀로 인해 주거비용이 많이 들고 일자리 경쟁이 심해져 젊은이들이 출산을 꺼리면서 나라 전체를 ‘인구절벽’으로 몰고가며 소비절벽과 노동력 감소로 국가가 급격히 쇠퇴하는 것이다. 그 소멸 위험 기준은 지역별 65세 이상 고령 인구와 20~39세 여성 인구의 비율이 0.5 이하로 떨어질 때로 본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한국도 읍·면·동 약 3500개 중 40%인 약 1400개가 소멸 위험에 가까이 와 있는 셈이다.

수도권 과밀 억제 정책과 균형발전 정책이 본격 시행된 20여 년간 오히려 수도권 인구가 늘어나고 생산 집중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균형발전을 위한 각종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는 속도보다 탈지방화의 속도가 더욱 빨랐다는 이야기고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이런 현상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과정에서 한 지역의 현상이지만 눈여겨봐야 할 사례가 있다. 한국전력이 이전한 빛가람혁신도시가 들어선 나주다. 혁신도시가 들어선 이후 인구가 26% 정도 늘고, 텅 비었던 지방산업단지가 70% 이상 분양됐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면서 소비경기가 살아나고 학교 병원 호텔 등 시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280개 이상의 중소벤처기업이 들어오면서 이들에 고급인력을 공급하기 위한 특성화 공대 건립도 추진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인구가 더욱 늘어나니까 “쓸 만한 기술인력이 없다”고 지방 이전을 꺼리던 수도권 기업의 이전을 더욱 촉진해 눈부신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한전은 이곳에서 개발한 기술과 생산 제품을 세계시장에 알리기 위해 광주에서 전력 전문 박람회를 열기 시작했다. 3회째인 작년에는 개최 시기 전후 광주와 나주의 호텔 방이 동나고 고속열차 표를 구할 수 없었다. 외국 기업인과 전문가만 3000명 이상이 다녀갔다. 그러면서 광주 등 주변 지역은 글로벌 지수가 높아져 국제적으로 인식되는 도시가 되는 것이고, 아마 이것이 지방의 꿈일 것이다. 이 같은 결과는 무엇보다 본사가 이전했기 때문이다. 지역 혁신과 발전은 청년에게 일자리와 미래를 만들어주는 중심 기업이 있어야 한다. “지방에는 공장만 있어서 일만 하고 의사결정과 혜택은 본사가 독차지한다”는 것이 지방민들의 불평이다.

많은 공기업 본사가 지방으로 이전했지만 1000대 민간 기업 중 여전히 74%가 본사를 수도권에 두고 있다. 민간 기업들은 수도권에 본사를 유지하는 비용이 큰 부담인데도 지방의 사업 및 정주 여건이 너무 열악해서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이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이지만 본사 이전이 어려우면 제2본사 형태로 신규 사업 분야라도 본사 기능을 지방에 두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 경영층의 확고한 의지와 지원이 따를 경우 협력기업들의 동반 이전도 가능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현실적 난관에 부딪히겠지만 중앙정부의 강력한 분산 지원 정책과 지자체의 유치 노력이 뒤따를 경우 안 될 것도 없다. 무엇보다 하루하루가 다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천년의 기획’ 같은 나른한 꿈으로부터 지역주민들이 깨어나도록 하고, 지방 도시마다 비즈니스 거리를 조성해 넥타이를 맨 청년들이 점심 때 쏟아져 나오는 지방으로 탈바꿈하도록 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이런 염원이 곧 있을 지방선거의 표심과 개헌 논의에 반영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