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완의 데스크 시각] 삼성증권 사태와 '신뢰'에 대해
‘100만 분의 1 확률’이라고 한다. 지난 6일 발생한 삼성증권의 우리사주 배당 오류 사고 얘기다. 주당 1000원이 입금돼야 하는데 1000주가 입고돼 112조원이란 어마어마한 규모의 ‘유령 주식’이 직원들 계좌에 꽂혔다.

해프닝일 수 있었던 사고는 16명의 직원이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면서 큰 사건이 돼 버렸다. 배당금과 배당주식 입력 버튼이 한 화면에 배치돼 있고, 잘못된 입력이 실행되고 나서야 경고가 뜨는 허술한 전산 시스템, 결재 단계에서도 거르지 못한 안이한 업무 처리, 탐욕이든 호기심이든 잘못 들어온 주식을 냅다 팔아 치운 직원들의 모럴해저드까지 겹쳐 일어난 사고였다. 1년에 딱 한 번 우리사주 배당 때만 쓰는 내부 시스템이다 보니 평소 관심을 두지 않았을 테고, 하필 그날 그 업무를 맡은 직원이 휴가 간 것까지 합치면 ‘100만 분의 1 확률’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고는 원래 그렇게 확률을 말하는 게 의미 없이 터진다.

무관한 공매도 폐지 주장

어처구니없지만 그 자체로는 단순한 사건이다. ‘외부세력 결탁 가능성’이 더 소설 같다. 금융감독원이 다른 증권사들을 살펴본 바로는 비슷한 사고가 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 ‘삼성증권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 후 직접 관련성이 없는 이해집단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공매도 폐지 주장이 대표적이다. 지난 주말 서울 여의도에선 셀트리온 소액주주 중심의 ‘희망나눔 주주연대’가 삼성증권 영업 정지와 공매도 폐지를 주장하며 촛불을 들었다. 셀트리온은 공매도의 주요 타깃이 돼 온 종목이다. 금융당국이 이번 사고는 공매도와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는다. 공매도 금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3만여 명이 참여했다. 다른 한쪽에선 개방된 자본시장에서 우리만 공매도를 폐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니 이참에 개인들에게 공매도 기회를 늘려주자고 주장한다.

삼성증권은 사고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당장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가 구성훈 사장을 비롯해 배당업무 관계자, 매도자 등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배임과 사기 혐의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고, 남부지검에서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증권업계 신뢰 점검 기회로

피해 보상 문제도 간단치 않다. 사고 당일 삼성증권 주식을 매도해 손해 본 모든 주주에게 그날 최고가 기준으로 보상한다고 발표했는데, 그 이후에 팔아 손해 본 사람들이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다. 또 하나의 기회를 ‘집단소송 전문’ 로펌이 놓칠 리 없다. 자동 손절매를 한 국민연금도 손해배상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서 국내 주식거래 시스템 전체에 문제가 있는 듯, 증권사가 범죄 소굴인 듯 요란스럽지만 시장은 차분하다. 삼성증권 고객들의 동요도 없다. 조현민과 드루킹 때문에 관심이 돌려진 덕도 있지만 투자자들이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증권사들은 이번 사태로 업계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안 그래도 자본시장이 ‘부자’ 중심의 사모펀드 위주로 재편되면서 일반 투자자들은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터다. 증권업계가 발전하려면 저변이 탄탄해야 한다. 국민이 자산 증식과 노후 대비 파트너로 믿고 거래할 수 있어야 한다. 신뢰란 쌓긴 어렵고 잃긴 쉽다. 이번 사태를 단순한 시스템 점검이 아니라 업계를 돌아보고 신뢰를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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