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숙한 사장님 車? 가속 페달 밟으면 스포츠카 따로 없네
겉모습에 속았다. 기아자동차의 검은색 대형 세단 ‘더 K9’을 처음 만난 느낌은 영락없는 ‘사장님 차’였다. 한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기만 할 것 같았다. 타 보니 달랐다. 정숙성은 기본이고 3.3L 터보 엔진이 발휘하는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치고 나가는 느낌이 마치 스포츠카를 방불케 했다. 신형 K9은 운전의 재미를 아는 ‘사장님’에게 후회 없는 선택지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 17일 강원 춘천시 더 플레이어스GC에서 서울 신천동 시그니엘서울까지 편도 78㎞ 구간을 신형 K9을 타고 달렸다. 주행모드를 ‘컴포트’로 설정하고 굽이진 시골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차체의 무게 중심이 낮아 곡선 구간에서 쏠림 현상이 없었다. 거친 노면을 지나도 운전석으로 충격이 전달되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는 “노면 특성에 따라 도로를 1024개 유형별로 인식해 도로 환경에 최적화된 주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차 안이 조용했다. 속도를 끌어올려도 소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컴포트 모드는 말 그대로 편안했다.

고속도로에 올라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바꿨다.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하는 의구심은 산산조각 났다.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자 차체 깊숙한 곳에서 엔진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뒤에서 누군가 차를 힘주어 미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디지털 계기판 바늘이 부드럽게 올라가 어느새 시속 130㎞를 넘어섰다. 차체의 떨림이 없었고 안정적이면서도 강한 힘이 느껴졌다. 가볍게 치고나간다는 느낌보다 대형 항공모함이 거센 물살을 가르며 전진하는 듯했다. 더 밟고 싶다는 ‘질주 본능’이 샘솟았다.

시승 구간이 길었지만 피로도가 덜했다. 첨단 주행 보조기술이 운전의 수고를 덜어줬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은 곡선 구간에서 알아서 속도를 줄여줬다. 방향 지시등을 켜면 좌우 사각지대 영상을 화면에 띄우는 ‘후측방 모니터’ 기능은 차선 변경을 도왔다. 터널에 진입하면 알아서 창문을 닫고 공조 기능을 전환하는 터널연동 제어 기능도 기억에 남았다.

동료 기자에게 운전석을 넘기고 뒷좌석에도 앉아봤다. 레그룸(다리를 뻗는 공간)이 넓어 시트를 뒤로 한껏 젖혀도 무릎이 앞좌석에 닿지 않았다. 뒷좌석 냉방 통풍시트와 휴대폰 무선 충전기능 등 세세한 배려도 눈에 띄었다. 운전석과 뒷좌석 모두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