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비리 후폭풍에… 박인규 대구은행장직 사퇴
검찰이 금융계 채용비리 수사를 확대하면서 박인규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사진)이 은행장직에서 물러났다. 회장직 사퇴 여부도 상반기에 결정하기로 했다. 채용비리 의혹으로 이광구 우리은행장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잇따라 물러난 데 이어 박 회장도 행장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박 회장은 23일 대구 칠성동 대구은행 제2본점에서 열린 DGB금융지주 정기 주주총회에서 “지배구조 개선 및 변화와 혁신을 통한 도약과 은행의 안정을 위해 은행장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며 “회장직은 새 은행장이 선출되면 상반기에 거취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2014년 3월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으로 취임한 뒤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했다.
채용비리 후폭풍에… 박인규 대구은행장직 사퇴
금융계에선 검찰이 채용비리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것이 박 회장의 행장직 사임의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박 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지난해 8월부터 수사를 받아왔지만 큰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경찰은 두 차례에 걸쳐 박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검찰이 모두 기각했다. 작년 말에는 DGB금융지주와 대구은행의 고위 임원 3명을 한꺼번에 퇴임시키면서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검찰이 채용비리 수사에 본격 나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금감원은 지난달 대구은행이 3건의 채용비리를 저지른 혐의를 포착하고 검찰에 사건을 이첩했다. 대구지검 특수부는 금감원이 이첩한 3건 이외에도 30여 건의 채용비리 의혹이 있으며 박 회장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지역시민단체도 박 회장을 압박하고 나섰다. 시민단체들은 이날 주주의 위임을 받아 DGB금융 주주총회에 참석해 박 회장 퇴진을 요구했다.

박 회장이 행장직을 사임하자 대구은행과 함께 검찰에 고발된 국민은행, KEB하나은행, 부산은행, 광주은행 등은 검찰의 수사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검찰 수사와 금감원 조사를 동시에 받고 있다. 서울서부지검은 금감원이 이첩한 13건의 채용비리 의혹 이외에도 다른 부정 혐의가 있는지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은 최흥식 전 원장 사퇴 이후 20명의 검사직원을 하나금융에 보내 낱낱이 뒤져보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의 수사를 받는 KB금융은 최고경영진 친인척 채용 관련 의혹과 더불어 최근 여성 지원자 차별 문제까지 불거지며 곤욕을 겪고 있다. 이날 KB금융 주주총회에선 노동조합 관계자가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윤종규 회장은 “3년 동안 채용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 이 같은 논란에 휘말려 송구스럽다”며 “KB금융은 신입행원에 대해 지역인재 채용과 블라인드 면접 등 공정한 절차를 시행했으며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응하겠다”고 말했다.

금융계는 특히 국민은행이 남자 지원자의 점수를 올려준 의혹이 어디로 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는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 사안으로 청탁받은 지원자에게 특혜를 준 것을 처벌하는 업무방해죄보다 파장이 더 클 수 있다는 게 금융계 분위기다. 한 금융사 임원은 “과거엔 여성들이 출산 등을 계기로 퇴직하는 경우가 많아 남자 지원자를 우대해 주는 사례가 많았다”며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알 수 없어 긴장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대구=오경묵/이현일 기자okmook @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