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우방국과 힘을 합쳐 중국에 대항해야 한다. 연합군을 무역에도 적용할 수 있다.”

래리 커들로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내정자가 지난 14일 한 말이다.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유럽연합(EU)을 비롯한 대미 철강·알루미늄 수출국에 제시한 다섯 가지 관세 면제 조건은 이 같은 ‘중국 포위전략’을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미 언론들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면제받지 못한 국가들에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본격 부과하는 23일(현지시간)에 맞춰 600억달러(약 64조1400억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또 다른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냐, 중국이냐’ 줄서기를 압박하면서 통상전쟁 구도를 ‘미국 대 세계’에서 ‘중국 대 세계’로 전환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트럼프의 '줄 세우기'식 통상전쟁… '반중 동맹' 결성해 시진핑 압박
◆중국을 집중 겨냥하는 미국

대미 철강·알루미늄 수출국들은 관세 부과 시점인 23일을 앞두고 미국과의 관세 면제 협상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면제 여부를 가르는 기준은 미국이 내건 다섯 가지 조건이다.

이 중 대미 철강·알루미늄 수출량을 2017년 수준으로 억제하라는 요구는 각국이 자율적으로 쿼터를 설정하라는 얘기다. 다른 네 가지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 행위에 공동 대응하고,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중국을 제소할 때 공동 보조를 맞추며, 철강 글로벌 포럼(GFSEC)에서 미국을 지지하고,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중국에 함께 맞서자는 요구여서 관세 면제를 원하는 국가들은 중국과의 외교·안보·통상관계 등을 고려할 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미국 지식재산권에 대한 중국의 침해 조사결과를 토대로 100여 종 이상의 중국산 제품에 600억달러에 이르는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23일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 발표 내용엔 중국 기업의 미국 첨단기업 투자 제한, 중국인 비자 발급 축소 역시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면제 협상 앞두고 전력투구

보복관세 품목을 발표하며 반격을 예고한 EU는 미국과의 협력을 모색하고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지난주 EU는 관세 면제를 요청하는 내용의 비공개 문서를 미국에 전달했다. EU는 이 문서에서 “(미국 철강시장의) 주된 가격 압박은 특히 중국의 비시장적 행위가 촉발한 과잉생산에서 비롯된다”며 미국과의 광범위한 협력관계를 강조했다.

미국이 내건 다섯 가지 조건이 보도되자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는 상승했다. 시장은 EU가 미국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지난 10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와 협상했던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20일 미국에서 윌버 로스 상무장관과 라이트하이저 대표를 다시 만난다. 독일의 피터 알트마이어 경제부 장관도 19일 워싱턴DC에서 로스 장관을 만난 뒤 “이번 주말까지 긍정적 신호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19일 아르헨티나에서 개막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선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을 상대로 한 각국의 막판 로비가 뜨거웠다. 한국, 프랑스, 사우디아라비아, 캐나다, 호주, 영국 재무장관이 므누신 장관과 만났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므누신 장관과의 회담에서 한국을 관세 대상에서 빼줄 것을 요청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워싱턴DC에서 미 관계자들과 접촉을 이어가고 있다.

◆“미·중 통상전쟁 승자 없을 것”

이들 국가가 미국의 조건을 수용해 관세 대상에서 빠지면 사실상 중국만 남게 된다. 미·중 간 통상전쟁이 격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양국 모두에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미·중이 격돌하면 커다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미국의 조건들을 수용할 경우 자칫 중국으로부터 ‘제2의 사드보복’을 당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20일 “중·미 무역전쟁에 승자는 없으며, 이성을 갖고 무역전쟁을 피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은 서비스업, 제조업 등에서 개방을 확대하고 있고 미국 기업들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며 “중·미 관계 안정은 양국과 세계에 모두 좋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뉴욕=김현석/베이징=강동균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