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청년 일자리에 이어 저출산과 관련해서도 대규모 재정을 퍼붓는 ‘특단의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저출산 기본계획을 처음 수립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재정 126조원을 쏟아붓고도 출산율 제고에 실패한 터라 벌써부터 재정 지출에 기댄 대책에 대한 회의론이 일고 있다. 정부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는 듯한 선심성 재정정책을 남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헬리콥터 정부?… 청년 일자리 이어 저출산도 돈으로 해결하나
◆상반기 내 ‘특단 대책’ 마련

기획재정부는 저출산 대책 마련을 위해 지난달 말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기재부는 △신혼부부 주거지원 △출산·양육에 대한 경제적 지원 △보육체계 개선 △일·가정 균형 △성평등 문화 확산 등 방안에 대해 연구결과를 보고받아 올 상반기 내로 저출산 대책을 수립할 계획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4일 주재한 간부회의에서 “저출산 문제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저해하는 큰 위험 요인”이라며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정부는 다음달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도 안건 중 하나로 저출산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35만7700명을 기록해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 30만 명대로 내려앉았다. 이대로라면 인구가 2027년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에 들어설 것으로 통계청은 전망하고 있다.

◆‘신혼부부 채움공제’ 도입하나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대책들은 추가로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사업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년내일채움공제’(정부와 기업이 지원금을 갹출해 중소기업 취업 청년에게 목돈을 마련해주는 것)를 본뜬 ‘신혼부부 주택 채움공제’가 대표적이다. 신혼부부 주택 채움공제는 결혼 후 일정 기간 내 저소득 무주택 부부들에게 매칭 방식으로 주택 구입 자금을 마련해주는 사업이다. 예컨대 신혼부부가 월 100만원씩을 5년 동안 내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같은 금액을 더해 5년 뒤 한꺼번에 목돈을 찾을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주택 마련이 어려운 신혼부부들에게는 전·월세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수조원의 예산 소요를 추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는 당초 올해 초 업무계획에 이들 대책을 포함하려 했으나 다른 저소득 계층에 대한 주거지원과의 형평성 문제 등이 제기돼 보류해왔다. 하지만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면서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자녀 출산 시마다 5000만원, 1억원 식으로 바우처(상품 및 서비스 이용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기재부는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저출산세 도입이 논의될 가능성도 있다. 지방교육세나 교통에너지환경세 같은 목적세를 신설해 저출산 사업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이다. 세계적으로 저출산세를 도입한 국가는 아직 없다.

◆4조원 추경 짜고선 또?

청년 실업, 저출산 등 구조적인 문제에 ‘돈 뿌리기식’ 대응에 나서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15일 청년 일자리대책을 발표하면서 4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계획을 내놨다. 노동유연성 강화나 서비스업 혁신 등 구조적인 대책은 외면한 ‘선거용 돈풀기’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부는 저출산과 관련해서도 매년 예산을 늘리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24조1000억원을 투입한 데 이어 올해는 연초 계획된 관련 예산만 25조원 이상이다. 올해 9월부터 0~5세 아동 1인당(소득 상위 10% 가구 제외) 월 10만원을 지급하는 아동수당에만 1조1000억원이 들어간다. 이것도 부족해 ‘특단의 대책’이란 명분으로 추가 재정 투입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저출산 대책은 정쟁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자유한국당은 저출산세 도입 가능성과 관련, “지난 12년간 126조원을 쏟아붓고도 모자라 세금까지 더 걷겠다고 하면 과연 어느 국민이 동의하겠느냐”며 “국민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정도껏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