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앞 시위하는 소상공인들 >소상공인연합회 회원들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국회 앞 시위하는 소상공인들 >소상공인연합회 회원들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대리운전총연합회는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제도 도입 가능성에 들떠 있다. 국회가 다음달에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면 카카오를 상대로 대리운전 서비스인 ‘카카오드라이버’ 중단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리운전총연합회는 대리운전 기사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2016년 6월 카카오드라이버가 출시되기 이전부터 강력 반발해왔다.

이훈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대로라면 정부는 적정 심사를 거쳐 카카오에 사업 축소 및 철수를 권고할 수 있고 불이행 시 매출의 최대 10%를 소상공인 육성 부담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또 카카오가 사업 확장 금지 명령을 거부하면 매출의 최대 30%를 이행 강제금으로 매길 수 있다.
정부, 골목상권에 직접 개입… "보호신청 남발 땐 신산업도 타격"
◆무분별한 신청 남발 우려

대리운전업계만 정부에 소상공인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업 과정에서 대기업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자영업자는 누구든 자유롭게 중소벤처기업부에 신청할 수 있다. 대기업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신청 품목에도 제한이 없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발표한 국정과제를 통해 현재 지정된 중소기업 적합업종 73개 중 전통떡, 청국장, 김치, 도시락 등 올해 상반기 지정이 만료되는 47개 항목에 한정해 소상공인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최근 여당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신청 품목에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 이 경우 휴대폰 대리점 한 곳이 소상공인 적합업종 지정을 요구해 받아들여지면 통신사는 직영점을 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신청이 폭주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행정력이 낭비되고 대기업은 경영권 침해가 일상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골목상권에서 거래되는 완제품과 중간재 중에 대기업이 생산한 품목이 아닌 것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너무나 비현실적인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야당도 반대하고 있다.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 의원의 법안을 수정·보완하는 내용의 법률안을 최근 발의했다. 소상공인 육성 부담금과 이행 강제금 조항 등을 삭제하면서 통상 마찰 우려가 있거나 시장 변화로 부작용이 생겼을 때 지정을 해제할 수 있도록 했다. 소상공인 1인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도록 한 이 의원안과 달리 소상공인연합회 정회원인 소상공인 단체에만 신청 자격을 주도록 했다. 정 의원은 “소상공인 보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기업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기업 옥죄기 법’이 될 수 있는 만큼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산업 발전 저해 가능성

적합업종 지정 요청이 빗발치면 신산업 탄생도 타격을 받을지 모른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산업 간 융복합으로 새로운 산업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소상공인 적합업종을 침해할 수 있어서다. 카카오드라이버를 포함해 택시, 숙박, 부동산 거래 등을 중개하는 O2O(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는 대부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떠오르는 ‘펫산업’이 당장 규제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이미 애완동물 관련 산업 전반에 소상공인 적합업종 지정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롯데그룹과 하림이 긴장하고 있다. 하림은 지난해 펫푸드 공장 ‘해피 댄스 스튜디오(HDS)’를 완공하고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하림 펫푸드’를 출시했다.

대기업 계열 편의점에서 담배를 퇴출하는 것이 과연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에 맞는 것이냐는 반문도 나온다. 정연희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정책실장은 “편의점은 매출의 60~70%, 중소형 슈퍼마켓은 40~50%가 담배에서 나온다”며 “담배 소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대기업 계열 편의점에서 팔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편의점업을 영위하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편의점 점주도 크게 보면 소상공인”이라며 “영세 소상공인이 덜 영세한 소상공인의 밥그릇을 빼앗겠다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비판했다. 또 이 문제는 소비자의 편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이라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2013년 자동차 전문 수리업(카센터)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을 때는 소비자들이 먼저 우려를 나타냈다. ‘동반성장’이라는 가치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의 안전을 다루는 자동차 수리업은 대형마트 규제나 프랜차이즈 빵집 규제와 달라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