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젠 연구원들이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를 연구하고 있다. 신라젠 제공
신라젠 연구원들이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를 연구하고 있다. 신라젠 제공
바이러스로 암을 치료하는 항암 바이러스 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암세포를 선별적으로 파괴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국내는 물론 미국 일본 등에서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암세포 저격하고 면역력 높여

글로벌 '항암 신약' 경쟁… 제2 신라젠 나오나
항암 바이러스는 바이러스를 조작해 암세포에 침투시켜 증식을 통해 암세포를 사멸한다. 이 과정에서 면역 유도 물질을 방출하면서 주변 면역세포들이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암세포는 일반적으로 면역세포 공격을 피하기 위해 면역 억제 물질을 만들어내는 등 정상세포처럼 보이려는 위장 전술을 펴는 데 항암 바이러스가 이를 방해하는 것이다.

기존 항암제는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는 데다 항암제에 내성이 생겨 치료 효과가 줄어드는 등 부작용이 있다. 반면 항암 바이러스는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면서 면역체계까지 활성화하는 이상적인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바이러스가 지니는 특유의 감염력 때문에 세포 내 침입이 쉬운 데다 다른 미생물에 비해 DNA 크기가 작아 유전자 조작이 간단한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국내외 벤처 개발 경쟁 치열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는 2015년 다국적 제약사 암젠이 흑색종 치료제 ‘임리직’을 처음 내놨다. 벤처기업, 연구소 등에서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 연구가 활발하다. 임리직도 암젠이 2011년 약 1조원을 들여 인수한 벤처기업 바이오벡스가 개발하던 치료제였다.

캐나다 온코틱스 바이오텍, 미국 온코벡스, 호주 바이랄리틱스 등 해외 벤처기업은 리오 바이러스, 코사키 바이러스 등을 이용해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바이랄리틱스는 다국적 제약사 MSD가 인수했다. 일본 다카라바이오는 미국과 일본에서 각각 임리직과 같은 헤르페스 바이러스를 이용한 치료제에 대한 임상 2상과 1상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선 신라젠이 대표주자다. 우두 바이러스를 이용해 간암 치료제로 개발 중인 ‘펙사벡’은 임상 3상 단계다. 김만복 단국대 의대 교수가 설립한 바이로큐어, 2016년 미국 벤처기업 바이럴진을 인수해 신약개발사업에 뛰어든 반도체 장비업체 알파홀딩스 등도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에 들어갔다.

◆병용 투여로 효과 두 배 커져

전문가들은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가 기존 항암제를 대체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대호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이론상으로 암세포를 파괴하면서 면역체계를 활성화할 수 있지만 실제 환자의 몸 속에서 암세포만 선별적으로 감염시키고 파괴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고 했다.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 효과가 아직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도 나온다. 임리직은 단독 투여한 경우 기존 면역 항암제보다 효과가 뛰어나지 않다.

이 때문에 항암 바이러스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단독 투여보다 여보이, 키트루다, 옵디보 등 면역항암제와 병용 투여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지난해 암젠은 임리직을 단독으로 투여했을 때보다 여보이와 함께 투여했을 때 효과가 두 배로 난다는 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키트루다와 병용했을 때 효과는 1.5배까지 늘어났다.

신라젠도 여러 건의 병용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신라젠 관계자는 “항암 바이러스는 치료제보다 암세포의 공격을 시작하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며 “항암 바이러스는 면역세포들의 효능을 배가시키기 때문에 다른 항암제와 병용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설명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