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춤하던 국내 상사업계가 부활하고 있다. 30년 넘게 한 우물을 파온 ‘정통 상사맨’ 출신 최고경영자(CEO)가 각기 다른 색깔로 설 자리를 잃어가던 종합상사를 살려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21일 김영상 포스코대우 사장이 연임에 성공하면서 LG상사 삼성물산 등 국내 ‘빅3’ 상사의 수장을 모두 ‘정통 상사맨’이 차지했다.

◆3인 3색 호(好)실적 이끌다

올해로 4년째 포스코대우를 이끄는 김 사장은 “상사업종이란 없어져야 하는 비즈니스가 절대 아니다”며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포스코대우는 작년 매출 22조5717억원, 영업이익 401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37%와 26% 증가하며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철강 비철 석유화학 등 전 부문에서 고른 성과를 낸 덕분이다. 김 사장은 올 들어 종합상사에서 종합사업회사로 회사를 탈바꿈시키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밝혔다. 그는 “일본에서도 상사무용론이 나왔지만 사업 분야를 보완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며 “포스코대우도 사업 영역을 넓혀 2030년 매출 40조원의 회사로 외형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상사맨 CEO '전성시대'… 종합상사 부활 이끌다
2014년 LG상사 대표에 오른 송치호 사장도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힌다. 최근에는 특유의 결단력으로 비철금속, 철강 트레이딩 등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팜오일 등으로 눈을 돌리면서 돌파구를 찾아나섰다. 그 결과 LG상사는 지난해 5년 만에 영업이익이 2000억원을 넘어섰다. 송 사장은 “전통 상사가 하던 고유의 영역은 인터넷 발달, 기업들의 해외 지사 확대 등으로 경쟁력을 잃었다”며 “자원과 인프라 등 새로운 먹거리로 눈을 돌리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고정석 삼성물산 사장은 올초 단행된 인사에서 유일하게 비(非)미래전략실 출신으로 대표직에 오르며 상사부문의 성장세를 주도할 인물로 인정받았다. 평소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수익원을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해온 그는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주목하고 있다. 완공을 앞두고 있는 ‘캐나다 온타리오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10개 지역의 풍력·태양광 발전 단지에서 꾸준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분석이다. 2010년 5조원을 들여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온타리오 주민 35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하게 된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매출 12조5549억원, 영업이익 1497억원을 거두며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114%나 증가했다”며 “선택과 집중, 리스크 강화 전략이 수익 창출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상사 이력만 ‘100년’ 넘어

종합상사의 부활을 이끌고 있는 세 명의 CEO가 상사업에서 보낸 시간을 합치면 100년이 훌쩍 넘는다. 김 사장은 1982년 (주)대우에 입사해 상사업에 발을 들였다. 이후 말레이시아 캐나다 러시아 등 세계를 누볐다. 2015년에는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에 올랐다. 포스코대우로 간판이 바뀐 회사의 첫 CEO이기도 하다. 업계 관계자는 “포스코대우가 최근 한국GM, 대우조선해양, 동부대우전자 등 굴곡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옛 대우 계열사와 달리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둘 수 있는 것은 전통 상사맨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송 사장은 35년간 상사업계에서 외길을 걸어오고 있다. 럭키금성상사에 입사한 그는 관리와 영업을 두루 거쳤다. 그는 “평범한 회사는 답답하고 막혀 있는 것 같아서 싫었다”며 “활동적인 상사에서 일하고 싶어 입사한 게 30년이 훌쩍 넘었다”고 말했다. 고 사장은 1985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상사와 연을 맺었다. 화학팀장, 화학·소재사업부장 등을 지낸 트레이딩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