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서남부의 항구도시 말뫼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도시(4위, 포브스 2017년 선정)로 꼽힌다. 인구의 절반가량이 35세 이하고, 하루평균 7개씩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생겨난다. 하지만 이 도시는 한때 ‘말뫼의 눈물’로 불렸다. 20여 년 호황을 누리던 조선업이 한국 등의 추격으로 붕괴하자 2002년 ‘골리앗’ 크레인을 단돈 1달러에 울산 현대중공업에 매각했다.
생존하기 급급한 지방 국립대… 지역 균형발전 역할은 꿈도 못꿔
‘말뫼의 기적’을 가능케 한 핵심은 말뫼대학이다. ‘맨땅’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던 말뫼에 젊은 인재를 공급하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1998년 말뫼대 설립을 시작으로 옛 조선소 부지에 세계해사대학 등 ‘인재공급소’가 들어서자 기업이 몰리기 시작했다. 바이오, 정보기술(IT) 등의 분야 30여 개 기업이 본사를 말뫼로 이전했다. 말뫼대도 설립 20년 만인 올해 학생 수 2만4000명, 스웨덴에서 여섯 번째로 큰 대학으로 성장했다.

‘반값 등록금’의 역설 중 하나는 지방대의 붕괴다. 등록금 동결은 재정 기반이 취약한 지방대부터 무너뜨렸다. 울산대에선 교수들이 십시일반식으로 월급 중 일부를 반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대학이 복지와 규제 대상으로 남아 있는 한 말뫼와 같은 기적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무너진 지방 대학들

지방 국립대는 ‘반값 등록금’의 최대 피해자다. 정부가 고등교육 예산 중 절반가량을 국가장학금에 쏟아부으면서 국립대 경상비 지원금이 3000억원(2011~2016년)가량 삭감됐다. 그나마 수도권 쏠림 현상을 최소화하는 버팀목 역할을 하던 거점 국립대들은 황폐화 수준의 피해를 입었다.

부산대 관계자는 “2003년 경암 송금조 선생이 305억원을 쾌척해 양산캠퍼스를 조성했지만 대학에 돈이 없어 10년 넘게 방치 상태”라고 말했다. 이남호 전북대 총장은 “지방 국립대는 지역균형 발전을 위한 사명이 있음에도 대학 구성원 모두가 생존전략에 매달려 있다”며 아쉬워했다.

‘곳간’이 비어가자 전국 대학들은 정부가 던져주는 재정지원사업에 목을 맸다. 교육부는 연간 1조5000억원가량의 예산을 잘 가르치는 대학, 기업과 잘 협력하는 대학, 연구 잘하는 대학, 이공계가 강한 대학 등 각종 명목을 붙여 대학에 골고루 나눠줬다. 결과는 대학의 ‘붕어빵’ 현상으로 귀결됐다. 한푼이 아쉬운 대학은 교육부의 모든 사업에 원서를 내야 했고, 학내 모든 시스템은 이에 맞춰졌다.

전국 국립대 중 11곳이 특화 영역으로 바이오를 꼽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정부의 바이오 예산은 35억달러(약 3조7359억원) 규모로 일본(25억달러)보다 많다.

◆도시 부활의 핵심은 대학

전문가들은 지역균형이라는 정부의 오랜 과제를 달성하려면 지방 대학부터 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20세기 후반 자동차와 철강산업 붕괴로 러스트벨트로 불린 미국 북동부 오대호 주변 도시들이 이제는 모든 측면에서 따사로움을 즐기는 선벨트로 불리고 있다”며 “도시 회복의 핵심은 펜실베이니아대, 존스홉킨스대, 카네기멜론대 등 대학의 연구 활동이 새로운 지식가치를 창출해내고 기업은 이를 이용해 경쟁력을 높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대학을 정부 지원금으로 연명하는 곳이 아니라 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연구개발(R&D) 자금을 기꺼이 투자할 수 있는 ‘파트너’로 변모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GM 공장이 사라진 군산만 해도 향후 도시 재생의 필수요건은 결국 대학 역할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국내 현실은 이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삼성전자 등 국내 대기업 10곳의 인사 및 R&D 담당자를 설문조사한 결과 ‘대학이 첨단연구 분야에서 기업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90%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A사 인사담당 임원은 “명문대조차 취업 사관학교로 전락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기업이 대학에 원하는 건 좀 더 본원적이고 학문적인 연구를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 0.61%

2016년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해 실질고등교육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 2011년 0.58%에서 0.03%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박동휘/공태윤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