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가 시가총액 규모가 큰 정보기술(IT) 및 바이오주를 집중적으로 팔아치우면서 코스피와 코스닥지수가 동시에 출렁거렸다. 한국 증시가 최근 며칠간 아이폰X 판매부진 우려, 바이오주 고평가 논란 등으로 갈지(之)자 흐름을 보이던 와중에 매각차익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는 외국인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세법 개정안에 외국인 투자자가 우려를 나타낸 게 ‘강펀치’를 날린 것으로 증권업계는 분석했다.
외국인 매도 공세에 길 잃은 IT·바이오주
◆외국인 매도에 출렁

22일 코스피지수는 18.15포인트(0.72%) 하락한 2502.11에 장을 마쳤다. 장중 1% 넘게 빠지며 2488.44까지 떨어지기도 했지만 오후 들어 안정을 찾으며 2500선은 지켜냈다. 외국인(1756억원)과 기관(721억원)의 동시 순매도가 지수를 끌어내렸다.

시가총액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2.19%, 3.00% 떨어지면서 전기전자업종(1.97%) 하락폭이 두드러졌다. 삼성전자에 대한 외국인의 ‘팔자’ 공세가 거셌다. 이날 1129억원을 순매도한 것을 포함해 올 들어 총 9374억원어치를 내다 팔았다.

판매 부진에 허덕이는 애플 아이폰X의 조기 단종설까지 흘러나오면서 중소형 IT주도 대거 하락했다. 애플의 주요 부품사인 LG이노텍(-2.64%) 비에이치(-5.56%) 인터플렉스(-18.11%) 등이 일제히 하락했다.

코스닥지수도 외국인 순매도(720억원)에 6.90포인트(0.78%) 떨어진 873.09에 거래를 마감했다. 셀트리온(-2.50%) 셀트리온헬스케어(-4.84% ) 셀트리온제약(-5.94%) 등 ‘셀트리온 삼형제’를 비롯해 티슈진(-1.84%) 메디톡스(-1.10%) 등 시가총액 상위 바이오주가 내림세를 보였다. 이날 외국인은 셀트리온을 425억원어치 팔아치웠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을 통틀어 순매도 2위다.

◆혼란에 빠진 외국인

전문가들은 외국인 순매도 상위 종목에 시총 상위 종목이 대거 포함된 것에 “시총 비중에 맞춰 수동적으로 투자하는 인덱스펀드가 자금을 뺀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21일 미국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한국 정부의 세법개정안이 외국인 자금 유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일부 인덱스펀드에서 돈이 빠졌고, 시총 상위 종목의 하락폭이 컸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날 주요 증권사엔 외국인 투자자의 문의가 쏟아졌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국내 상장기업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외국인 양도소득 과세 기준을 묻는 전화가 쇄도했다”고 말했다.

이중과세방지 국제조약을 맺은 국가 투자자도 해당하는 것인지, 해외 펀드를 합산해 특정 종목 지분 5%가 넘으면 과세 대상이 되는지 등이 분명하지 않아 외국인이 대혼란에 빠졌다는 게 증권업게 관계자의 공통된 설명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조세피난처 등 조세조약 미체결국, 또는 조세조약상 과세 가능한 비거주자에만 적용된다”며 “펀드가 아니라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실제 투자자에 한해 과세하기 때문에 공모펀드 등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종목 장세 대비해야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작년부터 이어진 유가증권시장의 삼성전자, 바이오의 셀트리온 위주 장세에서 벗어나 업종·종목별 순환매 장세가 시작될 것”이라며 “지수를 좇는 인덱스 투자보다 실적개선 여부,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등까지 고려한 종목 발굴이 중요해지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유겸 케이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번주 4분기 실적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투자자의 눈길도 테마보다는 개별 종목의 실적개선 여부로 옮겨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증시는 23일 LG디스플레이와 삼성SDI를 시작으로 24일 포스코, 25일 네이버와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의 작년 4분기 실적 발표가 줄줄이 이어진다.

윤정현/조진형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