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월21일 오후 4시16분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와 북한의 핵도발에도 사라지지 않던 외국인 투자자의 미소가 사라질 것이다.”

홍콩의 자본시장 전문 매체 파이낸셜아시아는 한국 정부의 외국인 대주주 양도세 대상 확대 정책에 대한 해외 투자자의 ‘싸늘한 반응’을 이처럼 설명했다.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블랙록 같은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이미 한국 주식 비중을 낮추는 포트폴리오 조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주식 1억원 팔면 무조건 1100만원 원천징수… 외국인 투자하겠나"
외국계 증권사 ‘초비상’

세법 개정안에 따르면 오는 7월부터 외국인 투자자는 상장사 주식을 팔 때 매각 시점으로부터 과거 5년간 한 번이라도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적이 있으면 매각금액의 11% 또는 매각차익의 22% 중 낮은 금액을 세금(지방소득세 포함)으로 내야 한다. 상장사 지분 25% 이상을 보유한 외국인에게 과세하는 현행 세법보다 강화된 조치다.

세 부담이 늘어나는 건 상대적으로 가벼운 문제라는 평가다. 외국인 투자자와 증권사에 비상이 걸린 더 큰 이유는 현 거래 시스템에서 세법 절차를 따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는 무조건 매각 금액의 11%를 원천징수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세법은 외국인 투자자가 내야 하는 세금의 원천징수 의무를 증권사에 부여하고 있다. 탈세 등이 드러나면 증권사에 세금과 가산세를 물린다. 문제는 증권사는 투자자가 △과거 5년 동안 한 번이라도 5% 넘게 해당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는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은 없는지 △취득가액은 얼마인지 등 원천징수를 위한 핵심 정보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 금융감독원도 그런 정보를 알거나 제공할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다.

증권사들은 “투자자가 수익을 냈는지,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매각 금액의 11%를 무조건 원천징수하고 면제 대상인 투자자는 국세청에 직접 환급을 신청하도록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증권사로서는 거래 수수료(0.02~0.4%)의 최대 500배에 달하는 세금을 내야 할 위험을 피하기 위해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 대형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만약 1억원어치 주식을 내다 팔면 손해를 봤더라도 일단 1100만원의 세금을 떼이는 셈”이라며 “시장에 미칠 충격을 상상하기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MSCI, 한국 비중 축소 시사

블랙록 피델리티 뱅가드 등 해외 대형 자산운용사는 펀드 포트폴리오에서 한국 비중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과세 당국은 자산운용사 본사가 미국 등 조세 조약이 체결된 국가에 있다고 하더라도 펀드에 돈을 넣은 최종 투자자 국적을 기준으로 과세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공모펀드의 경우 수백, 수천 명에 달하는 투자자 국적을 일일이 추적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산운용사는 조세 조약 혜택을 받지 못할 것으로 가정하고 대응 전략을 짜고 있다”고 전했다.

특수관계인 지분율 합산도 골칫거리다. 대형 운용사들은 여러 명의 매니저가 다양한 펀드를 운용하기 때문에 한 개 펀드의 특정 종목 지분이 5%를 밑돌더라도 운용사 전체로 보면 5%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가 다른 운용사의 펀드를 통해 같은 종목을 보유하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도 또 다른 걸림돌이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MSCI신흥국지수에서 한국 비중 축소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시아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ASIFMA)의 유지니 셴 자산운용부문 헤드는 “세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자산운용사들이 한국 주식 비중을 줄이려고 할 게 확실하다”며 “MSCI 등 지수 산출 기관도 한국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는 다시 이 지수를 추종하는 전체 자산운용사의 한국 비중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우려다. 지난 9월 말 현재 MSCI신흥국지수를 추종하는 세계 투자금은 1조6000억달러(약 1700조원)에 달한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