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보복 운운한 데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이 전 대통령의 전날 성명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또 이 전 대통령이 마치 청와대가 정치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한 데 대해 “이는 정부에 대한 모욕이며 대한민국 대통령을 역임한 분으로서 말해서는 안 될 사법질서에 대한 부정이고 정치 금도를 벗어나는 일”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과거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 의지를 여러 차례 강조하기는 했지만 검찰 수사 중인 이 전 대통령을 겨냥해 ‘분노’ ‘정치 금도를 벗어난다’는 등 강도 높은 비난을 가한 것은 이례적이다. 문 대통령의 의도와 상관없이 강도 높은 검찰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불의에 대한 인내는 무책임한 것”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검찰 수사가 이 전 대통령을 겨냥한 후에도 철저히 관망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자칫하면 ‘정치보복’이란 야권 등의 정치 프레임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서다. 청와대는 전날 이 전 대통령의 성명 발표 직후에도 ‘노코멘트’ 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직접 ‘분노’를 언급함으로써 적극적인 대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간 많은 인내를 해왔지만 모든 것을 인내하는 게 국민 통합은 아니다”며 “적어도 정의롭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인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이 불안해할 얘기를 일방에서 쏟아내는데 정부를 책임진다는 책임감으로 인내만 하는 것은 또 다른 무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을 직접 거론한 것이 문 대통령의 분노를 촉발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은 전날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해 많은 국민이 보수 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며 현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와 관련, “법질서 측면은 물론 개인적인 상당한 분노와 불쾌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 분노가 개인적인 것에 머물면 안 되고, 대통령의 분노는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것과 연관이 있다고 보면 된다”고 비켜갔다.

◆靑 “법과 원칙에 의한 수사”

문 대통령이 직접 대응에 나서면서 이 전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더욱 힘을 받게 됐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가 검찰 수사의 ‘가이드라인’은 결코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등 측근들 자백까지 확보한 검찰 수사는 한층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나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말라는 게 국민 명령”이라며 “새로운 나라를 만들라고 만들어준 정부는 지침이나 가이드라인 같은 꼼수를 안 쓴다.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메시지는 법과 원칙에 의한 철저한 수사를 주문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성역없는 수사 주문 자체가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국민 대다수가 그것을 바라고 있지 않느냐”고 일축했다.

과거 정권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롯해 적폐청산의 시한과 관련, 청와대 핵심 참모는 “역사의 정의와 민주주의 가치를 세우는 일을 언제까지라는 목표를 정하고 할 수는 없다”며 “단정적으로 똑 부러지게 답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