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독일의 장수기업은 대부분 가족기업이다. 가족기업은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많다. 끈끈한 유대감과 원활한 의사소통, 공통의 경영철학 등이다. 금속가공업체가 몰려 있는 서울 문래동에는 특히 가족기업이 많다. 이 중 정밀기계부품업체인 대하정공은 부부, 열처리업체인 케이디시스템은 형제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불황의 한파 속에서 미래를 개척하고 있는 이들 가족기업인을 만나봤다.
대하정공의 최재식 사장(왼쪽)과 부인인 최인선 씨가 문래동 공장에서 금속 정밀가공과 관련해 얘기하고 있다.   김낙훈  기자
대하정공의 최재식 사장(왼쪽)과 부인인 최인선 씨가 문래동 공장에서 금속 정밀가공과 관련해 얘기하고 있다. 김낙훈 기자
◆대하정공

남편은 사장, 아내는 금속가공 베테랑… "정년 걱정 없어요"


[BIZ Success Story] 대하정공 & 케이디 시스템
대하정공(대표 최재식·52)은 서울 문래근린공원 부근에 있다. 80여㎡ 규모의 공장 안으로 들어서니 단정하게 정돈된 공장에선 CNC머신 머시닝센터 등이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들 기계로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부품, 기어, 가전제품 부품, 선박기자재 등을 가공한다.

임직원은 최재식 사장과 최인선 씨 단 2명. 이들은 부부다. 경기 고양시 자택에서 함께 출근하고 퇴근한다. 일이 밀릴 땐 인근 식당에서 얼큰한 동태찌개로 저녁식사를 한 뒤 야근도 함께 한다.

“이곳으로 온 지 1년여 만에 거래처가 20여 곳 늘었습니다. 문래동으로 오길 잘했습니다.” 최 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뭔가를 만드는 데 취미가 있었다. 군에서 제대한 뒤 22세부터 서울 청계천 3가와 을지로 3가 사이에 있는 소공장에 취업해 쇠를 깎기 시작했다. 올해로 30년째다. KAIST가 개발한 로봇의 부품도 깎았다. 작년 중반 문래동으로 옮긴 것은 공장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최 사장은 “청계천에 비해 공장은 3배 이상 커졌지만 월 임차료는 엇비슷하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최 사장은 “게다가 인근에 1300여 개의 공장이 있어 부품이나 소재를 구하고 가공하는 데 편리하다”며 “쇠를 깎은 뒤 이웃 공장에서 열처리할 수 있어 금상첨화”라고 말했다.

게다가 금속가공단지로서의 문래동 지명도가 갈수록 올라가면서 기계 부품을 깎거나 시제품을 만들기 위해 찾는 고객의 발길이 늘어 사업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주로 네이버 블로그(dh4816)로 영업하고 있다.

발주처가 이메일 등으로 기계 부품 도면을 보내오면 최 사장이 CNC머신이나 머시닝센터에 수치를 입력하고 부인인 최인선 씨가 가공을 맡는다. 기어를 깎는 호빙기나 범용 선반·일반 밀링은 최 사장이 담당한다. 공정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곧장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강구한다.

최 사장은 “우리 고객이 종전 30여 곳에서 50여 곳으로 늘어난 것은 단순한 임가공이 아니라 고객과 협의해 문제를 해결해주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어떤 업체가 현금자동입출금기 개폐 부분의 작동속도가 느리고 소음이 난다며 고민했는데 이를 해결해줬다”며 “이런 것들이 단골 고객을 늘리는 비결”이라고 덧붙였다. 게다가 단 한 개를 주문해도 정성껏 깎아준다. 금요일 오후에 부탁해 월요일 아침까지 완성해달라고 해도 기쁜 마음으로 주문에 응한다. 가공공차는 100분의 1㎜ 수준이다. 최 사장은 “이런 게 고객 사이에 소문이 나서인지 서울 경기는 물론 지방에서도 주문이 온다”고 말했다.

최 사장 부부의 자녀는 아들 둘이다. 둘 다 군복무 중이다. 최 사장은 “이만한 직업도 없다”며 “아들들을 모두 후계자로 키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 직업에 만족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나만의 기술이 있으면 주문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둘째, 정년이 없는 것도 강점이다. 50대에 접어들면서 퇴직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친구가 많지만 자신은 그런 걱정이 없다. 셋째, 고객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최 사장은 “고객들이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기존 제품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다 해결 방법을 알려주면 그것처럼 기분 좋은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일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준연 케이디시스템 사장(왼쪽)과 이상연 부장이 문래동공장에서 열처리 품질 향상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김낙훈  기자
이준연 케이디시스템 사장(왼쪽)과 이상연 부장이 문래동공장에서 열처리 품질 향상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김낙훈 기자
◆케이디시스템

2대째 열처리 분야 외길… "신사업 개척해 아버지께 보답"

[BIZ Success Story] 대하정공 & 케이디 시스템
광덕열처리는 한동안 국내 금속열처리 분야에서 손꼽히는 업체였다. 종업원이 150여 명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은 열처리사업을 접었다. 그 대신 이용익 광덕열처리 창업자(68)의 아들인 이준연 사장(44)이 케이디시스템이라는 열처리업체를 창업해 이 분야의 맥을 잇고 있다. 이 사장의 동생인 이상연 부장도 올해 합류했다.

서울 문래동 4가에 있는 케이디시스템에 들어서면 각종 열처리로와 금속제품이 공장 안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 사장은 “진공로 가스질화로 템퍼링로 등의 설비에서 금형부품 등을 열처리한다”고 설명했다. 열처리는 가열·냉각 등을 통해 재료의 특성을 개량하는 공정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무른 쇠가 단단해진다.

이 사장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 공장을 자주 드나들었다. 1978년 창업한 광덕열처리의 공장은 서울 양평동에 있었다. 경인고속도로 입구 부근이다. 이 사장은 “당시엔 야근이 많아 저녁이 되면 당산동 집에서 어머니께서 정성껏 마련한 밥과 국 반찬을 리어카에 싣고 양평동공장으로 운반하셨다”며 “그럴 때마다 저와 동생이 공장까지 따라다녔다”고 회고했다.

1987년 문래동으로 이전한 이 회사는 1993년과 1994년 당시 상공부가 주최한 열처리기술경기대회에서 ‘열처리기술의 탑’을 연이어 수상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대기업 공장들의 해외 이전에 따른 수요 격감과 열처리업체 간 과당경쟁,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사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20대 후반부터 열처리 공장에서 함께 일한 이 사장은 케이디시스템이라는 별도의 회사를 창업했다. 주된 사업분야는 판형프레스제품, 특수스테인리스, 금형부품, 밸브 등의 열처리다.

이 사장은 “우리는 특히 판형제품 열처리에 강점이 있다”며 “강도와 경도를 높여 변형을 막는 공정”이라고 설명했다. 금형 부품과 밸브 등 각종 부품의 열처리 경험도 풍부하다. 이 사장은 “경쟁보다 우리만의 기술력으로 승부를 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서울 독산동의 한 업체가 발주한 금형부품은 열처리가 잘돼 통상 6개월이던 금형 수명이 2년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6개월마다 이어지던 발주가 2년 단위로 길어져 매출은 조금 타격을 입었지만 그만큼 기술력은 인정받았다고 덧붙였다.

이 사장은 “일반 부품의 열처리 시장은 업체 간 과당경쟁으로 단가가 떨어지고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점차 변하고 있다”며 “남들이 하기 힘든 의료기기부품과 항공기부품 등 정밀기기 열처리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 사장은 “정밀도를 높이려면 고도화된 진공로가 필요하다”며 “일반 금형부품은 공기밀도가 일반 대기의 100분의 1 수준인 진공로를 쓰고 의료기기는 1만분의 1 수준의 진공로를 쓰지만 항공기부품은 1000만분의 1 수준의 진공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일본 업체와 접촉했지만 항공기부품이라는 말을 듣고 진공로 수출에 난색을 표해 국내 업체에 이를 의뢰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장은 경영을 총괄하고, 그의 부인은 사무를 보며, 동생인 이 부장은 생산과 연구개발을 총괄한다. 대를 이어 40년째 열처리업에 종사하는 이 사장의 꿈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광덕열처리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게 국내 열처리분야를 개척해온 아버지께 보은하는 길이라 믿고 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