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기업인 기 살리기'가 일본 경제 재건 해법
‘잃어버린 20년’으로 상징되는 일본 경제가 오랜 침체의 터널을 빠져나와 부활하는 모습이다. 지난 3분기 2.5% 성장률을 기록해 작년 1분기 이후 7분기 연속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닛케이주가지수는 23,000에 육박해 21년 만에 최고치다.

‘아베노믹스’가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취임 이전 6년 동안 6명의 총리가 교체되는 정치불안 상황에서 2012년 말 출범한 아베 정부는 경제 재건에 승부를 걸었다. 수출 확대, 임금 상승, 내수 촉진에 초점을 맞췄다. 엔저(低)를 바탕으로 수출 드라이브에 나섰다. 원화 대비 엔화 가치가 5년간 20% 이상 하락했다. 수송기기, 전기기기 등 4대 글로벌 제조업이 부활을 견인했다. 10위까지 떨어진 글로벌 제조업경쟁력지수가 4위로 재상승했다. 실업률이 출범 당시 4.3%에서 최근 2.8%로 떨어졌다. 기업의 사내유보금도 2013년 327조엔에서 2016년 406조엔으로 늘어났다.

친(親)기업정책이 실효를 거뒀다. 법인세율이 2013년 37%에서 인하돼 내년에는 29.74%가 될 예정이다. 유럽, 아시아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으로 경제 외연 확대에 공을 들였다. ‘국가전략특구’를 도입하고 카지노 허용 등 서비스업 활성화에 적극 나섰다. 설비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고정자산세를 0.7%로 낮췄고 내년부터 3년간은 부과하지 않을 방침이다. ‘산업경쟁력강화법’을 제정해 구조조정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게이단렌(經團聯) 회장을 경제재정자문위원으로 영입하는 등 재계와 긴밀히 소통해 정책 불확실성 제거와 기업인 ‘기(氣) 살리기’에 올인했다.

이에 따라 해외 공장의 본국 유턴이 촉진되는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게 됐다. 10년 만에 규슈에 디지털카메라 공장을 신설하는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회장은 “해외보다 일본 내 생산이 더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조사에 의하면 기업의 15.3%가 최근 3년 이내에 생산시설을 옮겼거나 옮길 예정이라고 한다.

주력 제조업체의 경쟁력 회복이 일등공신이다. 도요타자동차는 2014~2016년 연속 판매량 1000만 대를 기록했다. 미국 내 승용차 시장 점유율이 17.5%까지 상승했다. 도요다 가문과 전문경영인의 협치가 세계 정상의 자동차기업을 만들었다. 현장제일주의, 종신고용과 노사 화합의 기업문화가 성공의 배경이다. 60년간 미국에만 220억달러를 투자한 글로벌 전략도 일익을 담당했다. 소니의 부활 스토리는 감동적이다. 올 상반기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회사 역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렸다. 부활을 이끈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 특히 핵심 부품 경쟁력이다.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생산 노하우가 경쟁 업체를 압도한다. 이미지센서와 게임이 성장동력이다. 이미지센서는 글로벌 시장 점유율 45.8%로 세계 1위다. 히라이 가즈오 최고경영자(CEO)는 “소니만의 색깔을 구현하라”는 신념으로 1만 명 인력 감축, 무배당 선언 등 변화를 주도했다.

유연한 고용정책도 거론할 가치가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 단계인 ‘한정사원제’ 도입을 통해 고용 유연화를 촉진했다. 임금피크제, 계속근무제 등을 통해 일자리 부족 해소와 기업 부담 완화를 도모했다. 도요타자동차가 전면 재택근무제를 도입하고 집에서 일감을 처리하는 ‘클라우드 워커’가 400만 명에 육박하는 등 유연고용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물론 구조적 어려움도 적지 않다. 노인인구 비율이 27.7%나 된다. 이탈리아, 독일과 함께 세계 3대 노인국가다. 2040년에는 35.3%에 이를 전망이다. 생산가능인구 급감으로 노인 취업률이 22%나 된다. 파트타임 근로자 임금도 2.28% 상승했다. 노동시간이 길고 업무 강도가 센 건설, 유통, 제조 부문을 기피하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외국인 비율이 1.7%에 불과해 미국(13.5%), 영국(13.9%), 독일(14.2%)에 비해 턱없이 낮다. ‘늙은 일본’ 현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등 성장잠재력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국내총생산(GDP)의 250%에 달하는 국가채무는 ‘노인 대국’의 값비싼 사회적 비용이다.

그럼에도 일본 경제 부활은 기업의 기를 살려주는 사회적 배려가 경제 재건의 해법임을 잘 보여준다.

박종구 < 초당대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