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정부의 가상화폐 관련 대책 보도자료 초안이 사전 유출돼 올라 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정부의 가상화폐 관련 대책 보도자료 초안이 사전 유출돼 올라 있다.
지난 13일 발생한 가상화폐 대책 보도자료 사전유출은 관세청 주무관의 소행으로 확인됐다. 지인들과의 온라인 ‘단톡방’(단체 대화방)에 자료 사진을 올렸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졌다. 공직사회 보안의식 부재, 민간 메신저를 통한 업무 공유 관행 등이 화를 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무조정실은 15일 가상화폐 대책회의 보도자료 사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자료는 부처 간 업무 협조와 의견수렴 차원에서 국무조정실→기획재정부→관세청으로 전송됐고 관세청 직원을 통해 공직 외부로 유출됐다. 이 과정에서 관련자들은 정부 정보보안 지침을 무시하거나 국가공무원법 비밀엄수의무를 어겼다.
'가상화폐 대책 자료' 어떻게 유출됐나
정부 발표보다 2시간39분 앞서 유출

정부는 지난 13일 가상화폐 투기과열 차단을 위한 긴급 대책을 발표키로 하고 오전 10시에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었다. 그 결과를 담은 보도자료는 오후 2시36분 각 언론사에 배포됐다. 하지만 이날 오전부터 보도자료 초안이 SNS와 인터넷에 유출됐다. 가상화폐 커뮤니티인 땡글(ddengle.com)에 오전 11시57분께 ‘긴급회의 결과라고 합니다(믿거나 말거나)’ 제목으로 보도자료 3, 4페이지가 처음 유포됐다.

대책 발표를 앞두고 1900만원 선에서 1700만원대까지 떨어졌던 비트코인 가격은 보도자료가 유출된 뒤 ‘정부 대책이 예상보다 약하다’는 반응이 이어지면서 1900만원대로 급등했다. 보도자료 내용을 사전에 접하지 못한 투자자들은 상대적 피해를 봤을 가능성이 높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다음날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용납할 수 없다”며 “반드시 밝혀내 엄단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단톡방에 올렸다가…줄줄이 징계 불가피

국조실이 조사한 이날 유출 경로를 보면 보도자료안 작성자인 국조실 A과장은 의견 수렴을 위해 기재부 자금시장과 B사무관에게, B사무관은 같은 과 C사무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사달은 그 이후에 생겼다. C사무관은 이 자료를 출력한 뒤 휴대폰으로 촬영해 외환제도과 D사무관에게 카카오톡(카톡)으로 전송했다. D사무관은 의견수렴차 관세청 외환조사과 E사무관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냈고, E사무관은 전·현직 외환조사과 직원들과의 카톡 단톡방에 이를 올렸다. F주무관은 관세조사요원 카톡 단톡방에, 그 단톡방에 있던 G주무관은 민간인이 포함된 텔레그램 단톡방에 이 사진을 올리면서 공직 외부로 퍼졌다. 정부는 추가 조사를 거쳐 관계자들에 대한 징계 여부를 결정하고 필요하면 검찰에 수사를 의뢰키로 했다.

외부로 퍼뜨린 G주무관에게 직접적 책임이 있지만 이메일로 자료를 보내는 대신 카톡으로 사진을 전송한 공무원들도 징계를 피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 정보보안기본지침 제42조에 따르면 공무원이 민간 메신저를 통해 업무자료를 유통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아무도 안 쓰는 공무원 메신저, 참사의 한 원인

관가에서는 “민간 유출은 명백한 개인적 일탈”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관행이던 메신저 업무가 결국 사고로 이어졌다”는 반응이다. 그만큼 ‘카톡 업무 협조’나 ‘단톡방 업무 공유’가 공무원 사회에 일상화돼 있다는 얘기다.

한 공무원은 “이메일에 접속한 뒤 파일을 찾아 전송하는 절차가 번거롭다보니 카톡을 쓰는 게 일상화됐다”며 “특히 세종시로 정부부처를 옮긴 뒤에는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며 길거리에서 휴대폰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일이 부쩍 잦아지다보니 카톡 사용이 더 늘었다”고 말했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공무원 메신저도 참사의 한 원인이다. 행정안전부는 민간 메신저를 대체하기 위해 2014년 공무원 보안메신저인 ‘바로톡’을 개발했다. 하지만 보안을 강조하다보니 속도가 느리고 다른 앱의 작동을 막는다는 원성을 샀다. 행안부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이용건수가 가입자 1명당 하루 0.23회에 그칠 정도로 철저히 외면을 받았다.

고경봉/오형주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