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도 세계대전' 주목해야 한다
세계 지도시장에서 구글과 경쟁하는 히어맵(Here Map)이 2015년 8월 독일의 자동차 3사(아우디, BMW, 벤츠)에 약 3조5000억원에 인수됐다. 지난해 말 중국의 인터넷 업체 텐센트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은 히어맵의 지분 10%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곧바로 1주일이 지난 2017년 1월 초에는 세계 최대 컴퓨터 프로세서 메이커인 인텔이 히어맵의 지분 15%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히어맵 지분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한 기업들로는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기업 애플,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 택시서비스 업체 우버, 독일의 자동차부품 업체 보쉬 등이 있다. 왜 다양한 산업 분야의 강자들이 지도 업체 인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을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로 자리 잡은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을 위한 ‘고품질 지도의 안정적인 확보’에 그 답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 다른 어떤 상품체계보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주목받는 이유는 우리 인간이 살아온 방식에 일대 변혁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성능이 개선된 자동차는 넓은 교외 주거지에서 도시 중심부로 출퇴근하는 현재 미국의 전형적인 삶의 패턴을 만들어냈다. 자동차산업의 폭발적인 성장, 석유산업과 타이어산업의 지속적인 성장, 철도산업의 쇠퇴와 같은 산업의 변화뿐 아니라 교외 주거지역의 확대, 자동차 전용도로 인프라 건설, 도심주변 주택가의 쇠퇴와 같은 공간구조 변화가 수반됐다. 마찬가지로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로를 지배하게 되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기존 산업분야의 쇠퇴와 도시구조 및 인프라의 변화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의 핵심은 안전성과 신뢰성이다. 센티미터 수준의 정확성을 갖고 내 차가 몇 차로에 있는지 알려줄 수 있는 지도를 기반으로 과거 이 도로를 지나간 수많은 차량의 궤적 분석, 주변 차량과의 정보 공유, 공공에서 제공하는 기타 정보 등을 지도 위에서 통합해 발생 가능한 사태를 미리 분석하고 대응할 때 인간보다 확실하게 뛰어난 주행기술이 확보될 수 있다. 이것이 4차 산업혁명 상품체계의 총아인 자율주행 자동차에 지도가 중요한 이유다. 이 전쟁에 뒤처진 애플이 2016년 인도 하이데라바드에 4000명 직원을 채용해 자체 지도제작센터를 만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구글, 애플, 테슬라, 인텔, 우버, 바이두, 화웨이, GM, 포드, 도요타, 독일 3사 등과 우리나라 삼성, 현대자동차, SK, 네이버까지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에 뛰어든 세계 최고의 업체는 많다. 자율주행 자동차 분야의 미래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10년 뒤 시장은 구글맵, 애플맵, 히어맵 등 세 진영으로 나눠질 것으로 예상한다. 독일 자동차 3사가 중국 기업과 인텔에 지분을 매각한 이유는 다가오는 지도 세계대전에서 아군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히어맵은 중국 시장의 선점을 선포하고, 히어맵에 최적화된 자율주행 자동차용 인텔 프로세서 개발에 나선 셈이다.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에 뛰어든 한국 기업들은 만시지탄이지만, 더 늦기 전에 한 진영에 참여하기를 충고한다. 전 세계 초정밀 지도 확보 없이 자동차 분야 및 IT 분야에서 강자가 되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허준 < 연세대 교수·사회환경시스템공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