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그제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4대 원칙’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4대 원칙은 중국이 1990년대부터 주장해 온 ‘한반도에서 전쟁 절대 불용, 한반도 비핵화 원칙 견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 평화적 해결’ 등 3대 원칙에 남북한 관계 개선을 추가한 것이다. 애초부터 중국의 의지가 크게 반영된 셈이다.

4대 원칙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 한·중이 그간 주장해온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는다. 전쟁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북핵 문제도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대북 최후 카드로 군사옵션을 거론하고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 논의까지 나오는 시점에 양국 정상이 ‘원칙’이란 제목을 내걸고 공식 합의했다는 점이다.

차후 한국의 운신 폭을 매우 좁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사드 문제와 관련해 국회 답변 과정에서 표명한 이른바 ‘3불(不)’을 두고 국가 간 약속이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며 이를 지키라고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중국이다. 4대 원칙에 포함된 ‘평화적 해결’이라는 고리로 한·미 군사훈련을 반대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4대 원칙은 대북 군사 옵션까지 검토하는 미국의 압박정책과 배치된다는 점도 그렇다. 정부는 “4대 원칙이 미국 입장과 다르지 않다”고 하지만, 한·중이 공조해 미국의 실력행사를 막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소지도 있다. 두말할 필요 없이 한·미 동맹에 금이 가도록 해선 안 된다. 중국이 한국을 통해 미국을 견제하려는 측면은 없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한반도 비핵화 역시 또 다른 족쇄가 될 수 있다. 여섯 차례에 걸친 북한의 핵실험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결국 남쪽만 비핵화되고 만 꼴이다. 이런 마당에 한반도 비핵화 합의는 나중에 필요할 수도 있는 전술핵 배치 등 우리의 ‘핵 자위권’을 차단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4대 원칙’ 합의가 제2의 ‘3불 원칙’처럼 돼, 중국이 한국의 대외정책에 시시콜콜 더 간섭하는 꼬투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