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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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 쉐보레레이싱팀 감독 겸 선수(46)는 어릴 때부터 그저 자동차가 좋았다. 고향인 경기 부천은 그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1970~1980년대만 해도 논밭이 많았다. 동네 삼촌들이 태워주는 트랙터와 이앙기는 그에게 최고의 놀이기구였다.

남자 아이들은 웬만하면 자동차를 좋아하기 마련이지만, 그는 자동차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등 기계적인 부분에도 관심이 많았다. 중학교에 들어가선 용돈을 모아 고물상에서 1만~2만원짜리 고장난 오토바이를 샀다. 이리저리 뜯어보고 고쳐서 타보기도 했던 오토바이만 10여 대에 달한다.

중·고교 시절엔 오토바이 수리가 취미

운산기계공고(현 도화기계공고)에 다닐 땐 자동차정비 자격증을 땄고 졸업 후 군에 입대할 때까지 카센터에서 일했다. 1994년 6월 제대하자마자 지인들과 동업해 인천 주안동에 카센터를 차렸다. 대우자동차 에스페로 중고차를 사서 이리저리 개조해보던 차에 카센터 근처에서 아마추어 경주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人사이드 人터뷰] '최고의 레이서' 이재우 "레이싱은 속도 싸움이다? 승패는 멘탈·전략이 가르죠"
“현대자동차의 스쿠프를 개조한 경주차를 그때 처음 봤습니다. 며칠 동안 그 차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수소문한 끝에 중고 스쿠프를 샀습니다. 최대한 실력을 발휘해 개조했고 1995년부터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이 감독은 현재 국내 레이싱계에서 최고수 중 한 명으로 통한다. 국내 최대 경주대회인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GT1 클래스에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연속 개인 우승을 달성했다. ‘이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우승한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다. 하지만 그에게도 ‘하수(下手)’ 시절이 있었다.

“1995년과 1996년 각각 7차례 출전했는데 줄곧 5등만 했습니다. 한 경기 참가비가 300만원이고 1등해도 상금은 200만원밖에 안 됐죠. 5등 상금은 20만원이었으니 번 돈을 죄다 카레이싱에 쓰는 셈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나갔던 1996년 최종 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11월 진눈깨비가 오는 날에 열린 대회였는데 1등이 대여섯 번 바뀌는 치열한 경주였습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1등을 하고 나니 후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타이어, 브레이크 패드 등 소모품 위주였다. 부담이 확 줄자 그는 ‘1년만 더 해보자’고 다짐했다. 1997년 출전한 7경기 중 5경기에서 우승했다.

“1998년 당시 대우자동차에서 ‘모아모아 레이싱팀’을 조직했습니다. 월 고정급 30만원에 좋은 성적을 내면 보너스를 받는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가 왔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차만 탈 수 있다면 행복했습니다.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자동차용품 벤처기업 카맨파크가 1999년 중반 레이싱팀을 설립하면서 이 감독을 스카우트했다. 벤처 붐에 자금이 넉넉했던 카맨파크는 2000년 시즌에 대회 우승 2000만원, 시즌 우승 5000만원을 내걸었다. 그러나 자금사정이 어려워진 카맨파크는 한 해 만에 팀을 해체했다. 이 감독은 다시 성우오토모티브가 운영하는 인디고레이싱팀으로 적을 옮겼다.

“지금은 레이싱을 모르는 사람도 인디고라는 팀의 이름은 들어봤을 정도로 명문 팀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막 커가는 중이었습니다. 팀과 저 모두 하나하나 발전하는 시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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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보레 팀 도약의 주역

한국GM이 2007년 쉐보레레이싱팀을 창단하면서 이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국GM 관계자는 “기왕 회사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레이싱팀을 만든다면 최고의 선수를 영입해 이른 시간 안에 좋은 성적을 내야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국GM의 선택은 옳았다. 쉐보레레이싱팀은 국내 최대 모터스포츠 대회인 CJ 슈퍼레이스의 GT1 부문에서 2007~2011년 5년 연속 종합 우승을 달성했다. 2014년과 2015년에도 거푸 포디움(시상대)을 석권했다. 2007년부터 올해까지 11회 대회 가운데 절반이 넘는 일곱 번을 우승했다.

GT1은 2L 이하 터보엔진을 장착한 양산차들이 출전하는 경주다. 팀당 두 대(두 명)가 출전하며 개인과 팀 부문에서 각각 등수를 매긴다. 이 감독은 쉐보레 팀의 일곱 번 우승 가운데 개인 1위를 다섯 번 달성했다. 한국자동차협회가 한 해 최고의 선수에게 주는 ‘올해의 드라이버 상’을 2008~2010년 3년 연속으로 받기도 했다. 다른 팀 선수나 감독들에게도 ‘믿을 수 있는 선수’ ‘함께 호흡을 맞추고 싶은 감독·선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지난해와 올해는 다소 부진했다. 올해 성적은 개인 10명 중 6위, 팀은 4개 팀 중 4위에 그쳤다.

“어떤 스포츠든 한 선수나 한 팀이 독주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경쟁이 펼쳐져야 대회에 관심이 높아지기 마련이니까요. 작년에는 인디고 팀이, 올해는 자동차 부품사인 서한에서 운영하는 서한퍼플 블루 팀이 우승했습니다. 그 덕분에 모터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좀 더 높아진 것 같습니다. 저와 쉐보레는 2년 쉬었으니 내년에는 기회가 있을 겁니다.”

레이싱은 ‘전략’의 스포츠

‘레이싱을 잘하는 방법’을 물었다. 이 감독은 첫 번째로 ‘전략’을 꼽았다. 앞차 운전자의 심리를 흔드는 다양한 전략과 전술이 있다는 설명이다. 카레이싱에선 시속 250㎞로 달리던 차들이 코너 100m를 앞두고 브레이크를 밟아 순간적으로 시속 60㎞까지 감속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브레이크 타이밍이 레이싱 성적을 가른다고 이 감독은 강조했다.

“차들의 성능이 비슷하기 때문에 직선 주로에선 추월하기가 어렵습니다. 앞차를 따라잡으려면 곡선 주로를 활용해야죠. 커브를 가장 빨리 도는 방법은 이른바 ‘아웃-인-아웃’입니다. 우회전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트랙 아웃코스인 가장 왼쪽 끝에 있다가 코너를 들어갈 때 인코스인 오른쪽으로 붙고 다시 코너에서 빠져나갈 때는 왼쪽 아웃코스로 가는 게 원칙이죠. 그런데 뒤차가 변칙적으로 처음부터 인코스에 버티고 있으면 앞차가 코너에서 인코스에 진입하는 타이밍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그때 뒤차가 인코스에서 아웃코스로 방향을 바꾸면서 속도를 급격히 올리면 역전할 수 있습니다.”

뒤차가 앞차 운전자의 심리를 흔들기 위해 갑자기 사이드미러에 비치지 않는 사각지대로 사라지기도 하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왼쪽 오른쪽을 왔다갔다하기도 한다. 이 감독은 이런 심리전 때문에 ‘멘탈’이 기량보다 중요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운전 기술이 뛰어난데도 성적을 잘 못 내는 선수들이 있어요. 그런 선수들은 경기 중에 흥분하는 경우가 많아요.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좋은 성적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경기장 안에서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지속적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합니다.”

이 감독은 “모터스포츠를 제대로 즐기려면 경기장에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열한 수싸움과 심리전을 TV 중계로는 제대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기장에 오면 열 명 중 세 명은 다시 안 오고, 네 명 정도는 기회가 되면 다시 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명은 골수팬이 되고, 그중 한 명은 직접 출전할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경주용 차들이 출발 직전 스타트 라인에서 엔진 회전수(rpm)를 최대한 끌어올릴 때의 진동과 굉음을 현장에서 느껴보면 모터스포츠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해외에서 모터스포츠 인기가 높은 것을 보면 충분히 재미있는 스포츠인데 아직 진가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안타까워요. 현장에서 보는 분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팬층이 두터워지고 선수 저변도 넓어지면서 더 좋은 선수가 나오고 경기 수준도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겁니다.”

이 감독이 속한 쉐보레 팀은 이 감독과 배우 안재모 씨가 선수로 뛰고 있고, ‘미케닉’이라고 부르는 정비 기술자가 5명 속해 있다. 한국GM은 차량과 연간 7억원 내외의 운영비를 지원한다. 국내에는 쉐보레 팀처럼 모터스포츠 선수에게 연봉을 주는 팀이 20여 개 있다. 지원 수준은 제각각 다르다. CJ 슈퍼레이스는 경주에 따라 총상금이 1500만~1600만원, 우승 상금은 800만~1000만원이다.

“팀과 정식으로 계약하고 연봉을 받는 프로가 되려면 먼저 자신을 알려야 합니다. 아마추어 대회부터 차근차근 밟아가야죠. 넥센타이어가 주최하는 아마추어 대회에 400여 명이 출전합니다. 차 값 빼고도 400만~500만원은 들여야 참가할 수 있는데도 참여 선수가 상당히 많죠. 모터스포츠의 인기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감독이 출전하는 CJ 슈퍼레이스 GT1은 2L 이하 양산차들이 출전하는 경주다.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 쿠페가 대부분이고 이 감독이 속한 쉐보레 팀만 준중형차인 크루즈를 활용한다. 크루즈의 엔진 배기량은 1.8L로 제네시스 쿠페(2L)보다 작다.

“그동안 쉐보레 팀이 낸 성적을 보면 크루즈의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어요. 자동차 경주라는 혹독한 환경에서도 출력을 꾸준히 유지해주는 데다 한 번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적이 없을 정도로 내구성도 좋습니다. 자동차를 추천해달라는 분들에게 항상 자신있게 권해요. 제가 속한 회사라서 이런 말 하는 거 절대 아닙니다. 하하.”

지난 5월 열린 2017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2차전에서 1위를 차지한 이재우 쉐보레레이싱팀 감독 겸 선수(왼쪽 세 번째부터)와 3위에 오른 같은 팀의 안재모 선수, 강영식 치프 엔지니어 등이 시상대에 올랐다.  /한국GM 제공
지난 5월 열린 2017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2차전에서 1위를 차지한 이재우 쉐보레레이싱팀 감독 겸 선수(왼쪽 세 번째부터)와 3위에 오른 같은 팀의 안재모 선수, 강영식 치프 엔지니어 등이 시상대에 올랐다. /한국GM 제공
국내 대표 카레이싱 대회

국내 최대 대회는 'CJ 슈퍼레이스'…쉐보레팀 11회 중 7번 우승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는 국내 최대 모터스포츠 대회로 꼽힌다. 2006년 ‘코리아 GT 챔피언십’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슈퍼레이스는 세계자동차연맹(FIA)이 공인한 국제 대회다. CJ그룹이 2007년부터 타이틀 스폰서를 맡고 있다.

박진감을 높이고 특정 선수에게 유리하지 않도록 매년 경주 종류와 규정을 개선하고 있다. 올해 CJ 슈퍼레이스는 캐딜락 6000, ASA GT, 현대 아반떼컵 등의 클래스로 운영됐다.

캐딜락 6000은 캐딜락이 제공하는 고성능차 ATS-V의 외관을 활용한 개조차가 달리는 ‘스톡카’ 레이스다. 8기통 6.2L 엔진에 최고 시속 300㎞를 낸다. ASA GT는 양산차들이 출전하는 경주다. 엔진 배기량과 무게·마력 비율 등에 따라 GT1에서 GT4까지 세분화된다. 예컨대 GT1 클래스에는 1.4~5L, 4~8기통 엔진을 탑재한 차량이 출전할 수 있다. 제네시스 쿠페와 쉐보레 크루즈가 주로 트랙에 오른다.

작년까지 별도 대회였던 현대 아반떼컵이 올해부터 CJ 슈퍼레이스의 한 클래스로 통합됐다. 이 경주는 한 회사의 단일 차종만 출전하는 ‘원 메이크 레이스’다. 최고 출력 204마력의 아반떼 스포츠로 경기를 진행한다. 올해 캐딜락 6000에는 아트라스BX 레이싱팀 등 총 16개 팀 30명이 출전했다. ASA GT에는 쉐보레 레이싱팀을 포함한 총 37개 팀 68명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현대 아반떼컵에는 46명의 아마추어 레이서가 참여했다.

한국GM이 지원하는 쉐보레 팀은 2007년부터 올해까지 11회 출전해 2015년까지 7번의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2015년에는 연간 7라운드 가운데 이재우 감독 겸 선수가 3·4·5·7라운드에서, 안재모 선수가 1·2·6라운드에서 1위를 차지해 ‘싹쓸이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