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을 취재하던 한국 사진기자가 14일 베이징 중국국가컨벤션센터(CNCC)에서 열린 ‘한·중 경제·무역 파트너십’ 행사장에서 현지 경호원들에게 폭행당한 뒤 쓰러져 있다. 연합뉴스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을 취재하던 한국 사진기자가 14일 베이징 중국국가컨벤션센터(CNCC)에서 열린 ‘한·중 경제·무역 파트너십’ 행사장에서 현지 경호원들에게 폭행당한 뒤 쓰러져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을 동행 취재하던 청와대 출입 사진기자들이 14일 한·중 정상회담을 6시간여 앞두고 중국 경호원들에게 집단 폭행당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장하성 정책실장, 주영훈 경호처장은 현장에서 긴급회의를 열어 폭력 사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중국에 엄중 항의한 뒤 외교부를 통해 중국 공안에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했다. 문 대통령도 즉시 보고받고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정상회담 6시간 앞두고 벌어진 폭행 사건

이날 사건은 문 대통령이 오전 10시50분께(현지시간) 베이징 국가컨벤션센터 ‘한·중 경제·무역 파트너십’ 행사에서 연설한 뒤 국내 기업 부스 2~3곳을 둘러보고 행사장을 빠져나간 직후 발생했다. 행사를 취재하던 기자단이 센터 B홀 중앙복도를 통해 이동하는 문 대통령을 따라가자 중국 측 경호원들이 한국일보 사진기자 한 명의 멱살을 잡고 넘어뜨렸다. 중국 측 경호원들은 이 과정을 촬영하는 다른 한국 사진기자의 카메라를 뺏어 던지려고 하는 등 위협했다. 현장 기자들은 신분증과 취재증을 보여주며 항의했고, 이 과정에서 양측의 시비는 몸싸움으로 번졌다.

중국 측 경호원 15명이 항의 중인 매일경제 사진기자 한 명을 복도로 끌고 나가 집단 구타했다. 사진기자들과 함께 있던 한국 취재진과 청와대 관계자들이 제지하려 했으나 중국 측 경호원들이 완력으로 밀어냈다고 한다. 현장에는 청와대 경호팀이 없었으며, 문 대통령을 수행하며 경호 중이던 것으로 알려졌다.

폭행당한 기자는 안구 출혈 등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며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 중이던 대통령 주치의는 사진기자의 부상이 심각하다고 판단, 대통령 치료 전용계약을 맺은 인근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해 MRI(자기공명영상), CT(컴퓨터단층촬영) 등 검사를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폭행 당사자가 KOTRA와 계약한 보안업체 소속일 가능성도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 누가 폭행했는지 신원을 파악해 경위 등을 확인해 보고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날 상황에 대해 중국은 “한국 주최 행사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발뺌하며 사과나 유감 표명 대신 ‘관심(關心: 챙기는 마음)’이라는 표현을 썼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만일 누군가 부상을 당했다면 당연히 관심을 표시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행사는 문 대통령 방중에 맞춰 한국 측에서 주최한 자체 행사”라며 “비록 한국이 주최했어도 중국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큰 관심을 표명한다”고 거듭 밝혔다.

중국 공안부는 현지시간으로 오후 9시께 수사에 착수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피해 기자 2명은 15일 오전 중국 공안의 대면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야당 “국가적 모욕…철저하게 대응해야”

야당은 이번 사태에 대해 ‘국가적 모욕’이라며 격앙된 입장을 내놨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기자단은 국빈 방문 중인 문 대통령 대표단의 일원으로 기자 폭행은 대한민국에 대한 테러행위다. 묵과할 수 없는 행위”라며 “순방을 중단하고 당장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의동 바른정당 대변인은 “외교적 결례를 넘어서 의도적인 모욕”이라며 “정권의 명운을 거는 각오로 철저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기자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중국을 국빈 방문한 한국 대통령을 동행 취재하던 기자들을 폭행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며 “언론의 자유를 탄압한 것은 물론 기자이기 이전에 인간을 모욕한 행위”라고 성토했다. 중국외신기자협회(FCCC)도 이번 사건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며 중국 정부에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13일 중국에 도착한 문 대통령이 두 끼 연속으로 중국 측 인사와 식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방중 당일 저녁 별다른 약속 없이 댜오위타이(釣魚臺)의 숙소에서 식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에는 숙소 인근 식당에서 부인 김정숙 여사, 노영민 주중 대사 내외와 중국식 아침식사를 했다.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차관보 겸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문 대통령을 영접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영접한 인사치곤 급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공교롭게 문 대통령이 도착한 날 난징대학살 80주년 행사가 열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자리를 비웠다. 중국 서열 2위인 리커창 총리는 베이징에 있었지만 문 대통령과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베이징=손성태 기자/조미현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