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정규직화 강제'가 답은 아니다
지난주, 아직 머리를 손질할 시기는 아니었는데 머리를 자르고 왔다. 수년간 단골이던 집 앞 미용실 원장이 문을 닫게 됐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큰 체인업체에서 일하다 자기 미용실을 차려 꼼꼼하며 세련된 일처리로 성업 중이던 사람이기에 충격이었다. 권리금도 받지 못하게 됐지만, 더 이상의 손실을 막기 위해 영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는 원장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원인은 세입자의 권리금을 노린 집주인의 꼼수에서 비롯됐다. 이참에 알게 된 것은 임대인이 주거 목적으로 들어와 1년 반 이상을 살면 권리금을 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독소적 예외조항이 임대차보호법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임대차보호법이 개정을 거듭했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임대인의 임차인 내쫓기’도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대차시장 못지않게 진화를 거듭하며 갈등을 보여주는 것이 노동시장이다. 최근 법과 제도를 피해 다양한 형태의 근로 유형이 만들어지고 있다. ‘고용의 우버화’는 여행 서비스뿐만 아니라 택시, 숙박, 배달, 부동산중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아예 고용관계를 단절한 특수고용노동자도 나오는 등 노동 생태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변화의 정점에서 지난 9월28일 고용노동부는 가맹사업본부인 파리파게뜨에 제빵기사를 파견법상 불법파견으로 간주해 직접고용토록 하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파리바게뜨와 협력업체 사이에 형식적인 계약관계는 없지만 제빵기사의 업무 수행 및 인사에 대해 실질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외환위기라는 철퇴를 맞은 후인 1998년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일 목적으로 파견법이 제정됨으로써 외부 노동력을 활용하려면 도급 방식에만 의존하던 데에서 벗어나게 됐지만, 파견제 적용은 32개 업무로 제한됐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파견 업종 대상을 고령자·고소득·전문직으로 확대하고 용접·금형 같은 뿌리산업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파견을 허용하자는 개정 논의가 있었지만 극렬한 대립만 보여주고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주와 사용자가 다른 ‘3자형 고용관계’인 하도급에 협력업체가 더해져 ‘4자 관계’로 진화한 파리바게뜨가 한 해 이익에 해당하는 인건비 증가 비용을 치러야 하는 시정명령을 받게 된 것이다. 문제는 제빵기사의 업무 수행에 협력업체와 가맹점, 가맹본부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용노동부와 파리바게뜨가 해결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제빵기사들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나뉘면서 문제는 더욱 꼬여만 가고 있다.

최근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반도체 수출의존도가 높다 보니 일반 서민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이런 와중에 서민을 상대로 하는 업종에서는 시장 변동에 대응하고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여전히 업무도급계약을 체결해 파견제도의 규제를 벗어나려는 경향이 심하다. 프랜차이즈업계에 만연해 있는 도급계약의 확산을 막으려면 파견제도의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정도다. 물론 원청이나 가맹본부가 협력업체나 가맹점 운영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이른바 ‘갑질’ 현상은 공정한 거래질서를 강화하는 경제법으로 꾸준히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해외 공장을 운영해온 독일 아디다스가 지난해 23년 만에 연간 50만 켤레를 생산하는 자동화공장을 자국에 열었는데 상주하는 인력은 단 10명뿐이라고 한다. 현재의 노동시장 상황을 그대로 두고선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어디에도 속하기 어려운 중간 단계의 일자리가 증가할 것이다. 문제의 본질인 파견 확대와 업무도급 활용을 뒤로 하고 정규직화만 강제할 경우 노동시장의 다양성이 실종되고 경직성이 확대돼 오히려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임대차법이든 파견법이든 법이 가고자 하는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법의 잣대로 단칼에 자를 것이 아니라 물 수(水) 변에 갈 거(去)가 합쳐진 법(法)이라는 글자 그대로 물이 흐르듯 순리대로 처리해야 한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