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hankyung.com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hankyung.com
스위스 수도 베른에서 6번 도로를 타고 1시간가량 서쪽으로 이동하면 닿는 코르제몽(Corgemont). 이 한적한 시골 마을에 스위스타이밍(Swiss Timing) 본사가 있다. 무미건조한 외관 탓에 평범한 부품회사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최첨단 정보기술(IT) 연구소를 방불케 한다. 이 회사가 올림픽 공식 타임키퍼(시간기록자)로 알려진 오메가의 실제 주인공이다. 스위스타이밍은 해마다 500개 국제 스포츠경기의 공식 타임키퍼를 맡고 있다. 내년 2월9일 개막하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도 350명의 타임키퍼를 파견한다.

시계회사가 아닌 기술회사

[Global CEO & Issue focus] 알랭 조브리스트 스위스타이밍 CEO
스위스타이밍을 이끄는 알랭 조브리스트(Alain Zobrist)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코르제몽 본사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스위스타이밍은 시계회사가 아니라 기술회사”라고 잘라 말했다. 스위스타이밍의 모회사인 스와치그룹은 블랑팡 오메가 브리겟 라도 론진 티쏘 등 17개 전통 시계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스위스타이밍은 그룹 내 전자기술 부문에서 첨단 미래를 이끌고 있다.

오메가는 193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타임키퍼가 됐다. 그때만 해도 손으로 작동시키는 0.1초 단위까지 측정 가능한 스톱워치를 사용했다. 1948년 필름 방식의 피니시라인 사진카메라가 도입됐으며 1951년엔 처음으로 TV 화면에 시간을 표시해 내보냈다. 1968년엔 수영 선수용 노란색 터치패널을 처음 설치했다.

오메가는 지난 5월 올림픽 경기 공식 타임키퍼 자격을 2032년까지 연장하기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협약을 맺었다. 100년을 줄곧 올림픽 타임키퍼를 맡게 되는 셈이다. 일본 세이코가 올림픽 타임키퍼 자리를 노린 적도 있다. 조브리스트 CEO는 “오메가의 기술력을 능가할 경쟁자는 없다”며 “오메가는 매번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며 경기력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스위스타이밍은 기술 발전과 함께 성장했다. 전신인 오메가타이밍은 1972년 론진타이밍과 합병하고 스위스타이밍으로 재탄생했다. 스위스타이밍이 대외적으로 오메가타이밍으로 불리는 이유다. 2005년 오메가일렉트로닉의 스포츠부서도 스위스타이밍에 통합됐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기간 스위스타이밍은 또 한번 업그레이드했다. 독일에 있는 비게데이터(소프트웨어)와 비게이노베이션(브로드캐스팅), 체코에 있는 비게MIC(웹서비스)를 인수하며 첨단 기술력을 확보했다. 코르제몽으로 지금 본사를 옮긴 것도 이때였다.

스위스타이밍의 전체 직원(410명) 가운데 연구개발(R&D) 인력만 180명에 달하다. 이 중 시간측정 소프트웨어 개발에 90명이 일하고 있다.

스포츠 마케터에서 기술회사 CEO로 변신

“정확도, 정밀함, 세밀함을 추구하는 게 오메가의 전통입니다.” 조브리스트 CEO는 오메가가 올림픽 경기의 타임키퍼를 맡게 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선수들의 성패를 가르는 것이 시간 측정인 만큼 오메가가 타임키퍼로서 최적격이라는 설명이다. 오메가는 휴먼에러를 없애기 위해 수기로 시간을 기록하던 것을 기계를 통해 측정하기 시작했다. 그는 “오메가가 없으면 올림픽 경기를 할 수 없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오메가로선 올림픽 경기만큼 마케팅 효과가 큰 플랫폼도 없다. 명품 시계 브랜드의 전통적 이미지에 최첨단 기술 기업이란 이미지를 덧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오메가에서 15년간 글로벌 스포츠 마케터로 일한 조브리스트 CEO가 2014년 11월 스위스타이밍의 CEO에 발탁된 배경이다. 그는 스위스 베른 태생으로 대학에서 마케팅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조브리스트 CEO에게 시간의 의미를 묻자 그는 “시간은 결코 멈추지 않지만 선수를 위해, 정확성을 위해 시간이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스포츠에선 시간이 생명입니다. 그게 스위스타이밍이 타임키퍼로 일하고 있는 이유죠.”

평창에서 선보이는 신기술

스위스타이밍은 스포츠 시간 측정과 데이터 처리기술 시장의 선도 기업으로 불린다. 정확한 시간 측정을 위해 시간기록기, 터치패드, 센서, 카메라, 레이저스캐너 장비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다. 시간 측정→정보 가공→동시다발적으로 정보를 보여주는 각각의 기술이 핵심 3단계로 꼽힌다.

선수들의 피니시라인 통과 순간을 측정하는 것은 ‘미리아’로 불리는 포토카메라가 맡고 있다. 2014년 기술 진보를 통해 1초에 1만 장의 이미지를 찍어낼 수 있게 됐다. 그 전엔 1초에 2000장을 찍었다. 18㎏ 무게의 퀀텀타이머도 핵심 장비다. 미리아카메라가 찍은 이미지를 타임키퍼가 정확하게 분석해낼 수 있도록 하는 컴퓨터 시간기록기다. 동시에 들어온 선수가 3명일 때 미리아카메라와 퀀텀타이머가 1000분의 1초까지 분석해 우열을 가려준다.

타임키퍼는 퀀텀타이머 화면에 뜨는 이미지를 픽셀마다 보고 누가 가장 먼저 피니시라인에 들어섰는지를 판단한다. 그런 뒤 심판이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측정기술 진화 속에도 최종 판단은 사람인 타임키퍼의 몫이다. 종목마다 가슴, 신체부위 등 피니시라인 통과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이 판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조브리스트 CEO는 “올림픽 경기 규정에 따라 기계가 아니라 심판이 협의해 최종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며 “앞으로 인공지능(AI) 수준으로 기술 발전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기계(로봇)가 기계를 조작하도록 두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장애인올림픽 경기를 위한 시간측정 기술은 더 종합적이고 복잡하다. 스위스타이밍은 시각장애인의 사격 경기 시간 측정을 위해 조준점에 가까울수록 소리가 점점 커지게 하는 기술을 접목시켰다.

스위스타이밍은 올림픽 때마다 새로운 기술을 선보인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는 스키 선수 신발에 손바닥보다 작은 빨간색 오메가 센서기를 부착해 점프 각도, 바람의 강도, 가속도, 위치 등을 측정해 TV 중계 화면으로 정보를 바로 보여주는 기능을 선보일 예정이다. 점프 길이, 스피드 등을 가상현실로 분석해주는 기능도 추가된다.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점프회전 시 각 트랙 이미지를 연결된 화면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코르제몽=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