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도가 낮다는 비판에 올해 폐지가 확정된 분기별 가계소득동향 통계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슬그머니 되살아났다. 정부와 여당이 소득주도성장 정책 추진에 필요하다며 애초 정부 예산안에도 없던 사업을 뒤늦게 끼워넣었다. 자칫 정권의 입맛에 따른 ‘맞춤형 통계’가 양산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내년도 통계청 예산을 살펴본 결과 분기별 가계동향조사 시행에 28억5300만원이 책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통계청 예산심의 과정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 효과 파악과 소득 변화 요인 등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며 예산 반영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1990년부터 시행된 가계동향조사는 그간 한국의 소득불평등 실상을 왜곡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통계청은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 가계동향조사를 올해까지만 하고 내년부터 중단하기로 지난해 말 결정했다. 그런데 새 정부가 불쑥 ‘소득주도성장 뒷받침’을 이유로 부활시킨 것이다.

[단독] 없앤다던 '소득 통계'… 슬그머니 되살린 당정
통계청의 소득분배 관련 통계조사는 크게 분기별로 발표되는 ‘가계동향조사’와 1년 단위로 나오는 ‘가계금융·복지조사’로 나뉜다.

가계동향조사는 통계청이 자체적으로 전국 9000여 표본가구를 선정해 가계부에 월 단위로 소득을 기입하게 하는 방식으로 통계를 산출한다. 자연히 고소득층이나 저소득층의 소득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는지에 물음표가 달렸다. 특히 초고소득자는 아예 조사원의 접근이 어려운 데다 조사에 응하더라도 소득을 축소 기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월별 소득 편차가 큰 자영업자나 고소득층의 이자·배당·임대소득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평균 응답률이 2011년 79.6%에서 지난해 74.7%까지 하락하면서 대표성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 비해 통계청이 한국은행·금융감독원과 매년 공동으로 발표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는 국세청 납세자료를 활용해 전국 2만 가구의 연간 자산 및 부채 현황까지 확인한다. 가계동향조사보다 정확한 소득 파악이 가능하다.

조사방법의 차이는 소득분배 지표의 신뢰성 논란으로 이어졌다. 가계동향조사의 지니계수가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지니계수보다 대체로 낮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보여주는 지표인 지니계수는 0에서 1의 값을 가진다. 0에 가까울수록 소득이 균등하게 나뉘어 있음을 뜻한다. 2015년 가계동향조사의 지니계수는 0.295지만 가계금융·복지조사는 0.341에 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지니계수(2013년 기준)는 0.317이다. 어떤 지표를 쓰냐에 따라 한국이 불평등이 상대적으로 덜한 나라가 될 수도, 심한 나라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가계동향조사가 고소득층의 소득 상황을 누락해 지니계수를 실제보다 미화하는 ‘통계착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논란이 계속되자 통계청은 지난해 말 고시를 통해 가계동향조사를 내년부터는 중단하기로 했다. 가계금융·복지조사를 기반으로 한 ‘신(新)지니계수’도 내놓겠다고 했다. 통계청은 가계동향조사 보도자료를 올해 1분기까지만 내고 2분기부터는 국가통계포털에만 공표하고 있다. 내년 2월 공표 예정인 올해 4분기 가계소득동향이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새로 집권한 여당이 불쑥 정부가 원래 요구하지도 않은 사업을 다시 부활시켰다.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성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선 분기별 소득동향 통계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가계금융·복지조사는 분기별로 나오는 가계동향조사와 달리 결과가 1년 뒤에야 나오는 단점이 있다. 그만큼 정부 부처와 연구자 등이 정책 효과를 시의성있게 파악하기 어렵다.

통계청의 모호한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통계청의 공식입장은 “당초 사업 부활을 의도하진 않았지만 여당 말대로 부활시키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황수경 통계청장은 지난달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가계동향조사가 대표성을 상실해 비판을 많이 받았다”며 “올해만 하고 끝내기로 결정해 내년도 예산에 편성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의원들이 조사를 다시 재개하려는 이유를 묻자 “조사를 재개해달라는 외부에서의 수요가 많이 있었다”고 답변했다. 외부 입김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끌려간다는 인상을 풍긴 것이다. 정부 일각에선 “가계동향조사 부활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관여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가계동향조사는 현 정부 출범 후 이미 한 차례 ‘맞춤형 통계’ 논란에 휩싸였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월24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작년 이후 6분기 연속 소득분배 악화가 예상된다”고 발언했다. 아직 2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가 국가통계포털에 공표되기도 전이었다. 통계청이 민감할 수 있는 분배지표 통계를 먼저 상급기관인 기재부에만 넘겼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 전문가는 “가계동향조사 부활은 통계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춤춘 ‘흑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