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여전히 부족한 한국의 사회적 자본 축적
실업 문제와 계층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 기업 의욕과 근로 의욕을 저해하는 국민의식, 제도 등 사회적 여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도로·항만·철도 등 물적 자본을 많이 축적했다. 그러나 신뢰, 법과 질서 등 사회적 자본은 매우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수많은 경제 활성화 대책을 추진해왔지만 효과가 미흡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게 사회적 자본의 부족이다.

한국에 가장 부족한 사회적 자본은 ‘신뢰’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20년 전 저서 《트러스트》에서 한국을 ‘저(低)신뢰 국가’로 분류했다. 우리나라는 신뢰 부족으로 인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늘 큰 비용을 지급한다. ‘세월호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사고 원인, 구조 과정, 조사 과정에서 숱한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4회에 걸친 수사와 조사, 재판까지 끝난 시점에 또 진상 조사를 한다고 한다. 그동안의 수사와 조사는 못 믿겠다는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 시절 ‘미국산 소고기 수입 파동’도 비슷한 예다. 전문가들이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성을 주장했지만 불신은 계속됐다.

각종 금융 부실 사건도 근본 원인 중 하나는 분식회계, 허위공시다. 몇 년 전 대우조선해양이 분식회계를 통해 대규모 적자를 은폐, 구조조정에 엄청난 국민 세금이 들어갔다. 20년 전 기업들의 대규모 분식회계로 경제 실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 외환위기에 대비하지 못했는데 아직도 분식회계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규제 완화가 제대로 안 되는 이유도 국민 불신 때문이다. 각종 인허가나 계약 시 인감증명서 제출 등 복잡한 절차의 근본 원인은 국민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고 있다. 외국에서는 서명만으로 될 일을 우리나라에서는 인감도장을 찍고 인감증명서까지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기에 인감도장을 찍고 이 도장이 진짜 인감이라는 정부 발행 증명서까지 첨부토록 한 것일까?

신뢰사회 정착을 위해서는 거짓말에 대한 사회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 거짓말에 관대하다. 미국은 2000년 매출 100조원의 거대 기업인 엔론이 분식회계로 파산하고 담당 회계법인 아더앤더슨도 문을 닫았다. 소고기 수입, 세월호, 천안함 등 각종 사회적 쟁점 사건의 경우 ‘가짜뉴스’로 국민을 속인 사람들이 여전히 활보하고 있다. 앞으로 학교 교실의 커닝부터 엄히 단속해야 한다. 각종 허위보고, 허위공시, 분식회계, 위증, 무고 등 거짓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법과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최근 기업이 국내 투자를 기피하는 중요한 이유는 법과 질서가 안 지켜져서 투자에 따른 불확실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공장 건설의 경우에도 지역주민들로부터 기부금 강요 등 숱한 불법적 민원이 쏟아진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주민 동의를 받아야 인허가를 해주겠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법적인 요구를 하면 결국 대가를 얻어 내니 불법 요구가 성행한다.

노사 갈등이 심한 것도 경제 활성화를 저해하는 큰 문제다. 불법적인 파업이 일어나도 노동당국이나 경찰은 개입하기를 꺼린다. 불법으로 공장을 점거한 노조원을 강제로 퇴거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라도 생겨 불상사가 생기면 해당 경찰 지휘관은 문책을 받기 일쑤다. 오죽하면 경찰 지휘관이 시위 진압 경찰관들에게 “싸우지 말고 맞으라”고 할까. 시위대가 죽창이나 몽둥이로 경찰관과 맞서 싸우는 광경도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의하면 법과 질서만 선진국 수준으로 지켜져도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이상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법과 질서는 엄정하게 유지돼야 한다. 정치인, 고위 공직자, 재벌 총수는 물론 노조원 등 모두에게 법이 공평하게 집행돼야 한다. 공권력도 확립돼야 한다.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행위는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 미국에선 불법적인 시위를 하면 현역 의원도 수갑을 채워 연행한다.

신뢰, 법과 질서 유지 등 사회적 자본은 잘 계량되지 않아 얼마나 부족한지도 모른다. 대책을 추진해도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적 자본 축적 없이는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어렵다. 기본이 바로 서야 한다.

최종찬 <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전 건설교통부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