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예산 늘려줘도 저 같은 말단까진 안 내려와"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외상외과 교수·사진)은 7일 “정치권과 언론 도움으로 예산을 만들어줘서 감사하지만 어차피 저 같은 말단 노동자들에게까지는 안 내려온다”며 “몇십 만원 하는 무전기 한 대 받을 수도 없는데 200억원 예산이 무슨 소용이냐”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 연구모임인 ‘포용과 도전’(좌장 나경원 의원) 초청 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국회가 정부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중증외상 진료체계 지원에 정부안보다 212억원을 증액하기로 했지만 예산이 현장까지 내려오지 않고 중간에 새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 교수는 참석한 의원들을 향해 “(예산을) 내려보내주면 행정관료를 통해 저 같은 말단 전문가한테 와야 하는데 의원들이 마련해준 예산 서플라이(공급)가 (어딘가로) 다 튀어나간다”고 했다.

내년도 보건복지부의 중증외상 전문진료체계 구축 예산은 정부안 400억4000만원보다 201억400만원 더 늘어난 601억4400만원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정부는 소형 헬기 한 대를 중형으로 바꾸고 한 대를 새로 늘리는 데 20억여원을 배정했고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의사·간호사 인건비 지원액도 늘렸다.

이 교수는 “언론이 ‘이국종 예산’이라고 하는데 피눈물이 난다”며 증액된 예산이 제대로 배분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응급의료 전용헬기(닥터헬기)에 무전기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한국에서 헬기를 7년 탔는데 무선교신이 안 된다. 200억원 예산은 고사하고 무전기를 달라고 한 것이 7년째지만 얘기해도 반응이 없다. 이것은 진정성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우리 해군항공대 헬기들은 야간·악천후에도 작전비행을 하는데 우리 닥터헬기는 일몰 후에는 날지 않는다”며 “닥터헬기가 중증외상으로 인해 출동하는 횟수는 전체의 20%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도 닥터헬기는 (야간 환자 수송을 요구하는) 아주대병원에는 절대 안 간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비판했다. 닥터헬기 대신 소방헬기를 요청해 타고 다녔다가 소방방재청으로부터 “헬기가 개인택시냐”는 핀잔을 들었던 경험도 전했다.

이 교수는 “제가 환자 때문에 힘들다고들 생각하시지만 그렇지 않다”며 병원 안팎에서 겪어온 고충을 토로했다. 아주대병원은 2012년 정부 지원을 받는 ‘권역외상센터’ 선정에서 탈락했다. 이어 과거 감사원에서 자신이 속한 아주대를 포함한 권역외상센터 세 곳만을 겨냥해 감사했다고도 말했다. 그는 “복지부가 2009~2010년 중증외상 특성화센터 사업을 위해 전국 35개 병원의 외상센터당 1억~1억5000만원을 보조했는데 (예산집행이 올바르게 되고 있지 않다고) 파열음이 나자 복지부가 35개 전체가 아니라 3곳만 하고 끝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어떤 고위공직자가 ‘이국종이 없으면 조용해질 텐데, 밤에 헬기 안 떠도 될 텐데…’라고 말했다고 전해들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강연 후 ‘정치권 영입설이 나오고 있는 것을 아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건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