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하위직이 91% '피라미드' 구조… 승진 적체에 활력 잃는 경찰
“이번에 승진했다고 하니 아내가 펑펑 울더라고요.”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A경위(43)는 지난 15일 발표된 정기 특별승진(특진) 선발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뒤 아내와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2014년 일 많기로 소문난 부서에 자원한 뒤 3년 내내 야근과 주말 근무를 밥 먹듯 하며 일했다. 집안일과 두 아이의 육아는 오롯이 아내의 몫이었다. A경위는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능력이 뛰어나도 반드시 승진한다는 보장이 없는 게 경찰 인사”라며 “저에 못지않게 고생한 동료들이 이번에 탈락해 죄스러운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매년 연말이 되면 전국 12만 경찰관들의 촉각이 온통 승진과 인사에 곤두선다. 지난 주말 이철성 경찰청장의 사임설이 불거진 뒤 경찰 조직이 발칵 뒤집힌 것도 이 때문이다. 청장이 교체되면 고위직부터 하위직에 이르기까지 후속 인사가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다행히 청와대가 “이 청장의 정년은 내년 6월”이라고 공식 발표한 뒤 논란은 수그러들었지만 그만큼 경찰 조직이 인사에 얼마나 민감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분석이다.

◆조밀하고 복잡한 인사 체계

[경찰팀 리포트] 하위직이 91% '피라미드' 구조… 승진 적체에 활력 잃는 경찰
경찰공무원법에 따르면 경찰은 9계급 체계인 일반 공무원과 달리 총 11계급으로 이뤄져 있다. 가장 하위직인 순경(9급), 경장(8급), 경사(7급)는 일선 지구대나 경찰서 등 현장에서 치안 업무를 맡는다. 경위(6급을)부터 경감(6급갑), 경정(5급), 총경(4급)까지는 ‘중견 경찰간부’로 분류된다. 일선 경찰서장이 보통 총경 계급이다.

‘경찰의 별’이라 불리는 경무관은 68명, 지방청장 및 경찰청 주요 국장급인 치안감은 26명이다. 서울청·부산청·인천청·경기남부청·경찰청 차장·경찰대를 각각 총괄하는 치안정감은 6명, 그리고 이 6명 중 1명만이 경찰 총수인 경찰청장(치안총감)에 오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다소 복잡한 승진 체계를 거친다. 승진제도는 △심사승진 △시험승진 △특별승진 △근속승진 등 네 가지로 분류된다. 경정 이하 경찰관은 일반적으로 최저근무연수를 채운 뒤 필기·면접·교육훈련성적 등을 반영한 시험승진으로 진급한다. 경무관 이하는 심사위원회를 거친 심사승진, 경감 이하는 근속승진(자동승진)이 대부분이다. 특별승진은 경찰직무에 특별히 공을 세운 자를 1계급 승진시키는 제도로 매년 한 차례 시행한다.

경찰 승진제도에 대한 불만은 매년 반복되는 레퍼토리다. 경찰개혁위원회가 지난 7월 연 간담회에서 일선 경찰관들은 “시험 승진에 매달려 편한 부서를 선호하는 폐단을 해소해야 한다”며 “승진제도를 명예승진과 근속승진으로만 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승진철이 되면 경찰관들이 근무지 근처 독서실에서 시험공부만 한다는 비판이 많았기 때문이다.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 자격증을 따면 경감까지 별도 심사로 승진시켜주는 ‘로스쿨 변호사 자격 취득자 별도 승진(경감)제도’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한 경찰관은 “휴직이나 공부로 치안 업무에 공백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세간의 지적도 틀리지 않다”며 “승진이 워낙 어렵다 보니 어떤 식으로든 로스쿨에 다니려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피라미드형 조직 구조가 문제

공정한 승진제도도 중요하지만 진짜 문제는 계급 구조라는 게 경찰 안팎의 지적이다. 하위직은 많은 데 비해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드는 피라미드형 조직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어떤 승진제도에서도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경찰 11만3077명 가운데 경위 이하 하위직 비율은 90.5%에 달한다. 경감, 경정 등 중간관리자 비율도 국가일반직 공무원(30.28%)의 3분의 1 수준인 9%에 그치고 있다. 경무관 이상 고위직은 전체 경찰의 0.07%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부적으로 ‘경포총(경무관 포기한 총경)‘ ‘총포경(총경 포기한 경정)’이라는 말까지 나돈다. 이들은 열심히 일할 유인이 없기 때문에 조직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강소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의 비정상적인 직급 구조에서 오는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친 승진 경쟁과 인사 적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라고 지적했다. 일반 공무원과 달리 경찰과 군은 계급정년이 존재한다. 일정 기간 승진하지 못하면 퇴직해야 한다. 예컨대 경정의 계급정년은 14년으로 그때까지 총경 승진을 하지 못하면 40~50대에 옷을 벗기도 한다. 강 교수는 “경정의 승진 스트레스는 경찰 전 계급에 걸쳐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며 “승진 압박으로 자살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일어난다”고 전했다.
[경찰팀 리포트] 하위직이 91% '피라미드' 구조… 승진 적체에 활력 잃는 경찰
◆“전문직군 체계로 개편해야”

직급체계에 대한 개선 방안으로는 ‘복수직급제 도입’이 꼽힌다. 복수직급제는 1994년 중앙행정기관의 정책수립 기능을 강화하고 중간관리자 승진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됐다. 예를 들어 서기관(4급) 사무관(5급)이 통상 맡았던 과장, 계장 중 주요 직위에 부이사관(3급) 서기관(4급) 등을 각각 임명하는 방식이다.

이는 현재 경찰과 군을 뺀 전 부처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에 복수직급제가 도입될 경우 총경 등 특정 직급에 대한 과도한 인사 수요를 해소할 수 있고 인력을 유연하게 관리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치안 수요를 고려해 경찰서를 늘리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전국적으로 경찰서가 없는 기초 지방자치단체는 10곳에 이른다. 다만 경찰서 증설에는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제약이 존재한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에 따르면 경찰 직급체계를 계급이 아니라 전문성 기준으로 재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계급주의 문화보다는 각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경위 또는 경감부터 일반행정직군과 전문가 직군으로 나눠 보직을 관리하는 인사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