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슐린·성장호르몬·멜라토닌… '몸의 지배자' 호르몬 균형 잡아야 건강
생체 신호를 전달하는 화학물질로만 인식했던 호르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의학계는 질병 원인으로 눈에 보이는 현상에 집중했다. 혈관이 막히고 통제할 수 없는 세포가 증식해 암이 생기는 것과 같은 조직 손상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과학이 발달해 이 같은 현상이 생기는 원리를 파악하면서 호르몬을 통해 건강의 비밀을 찾고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호르몬은 우리 몸의 실질적인 지배자”라며 “햄버거를 좋아하는 사람과 채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각각 장내 세균총에서 나오는 호르몬 영향으로 식성이 변하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했다. 그는 “호르몬이 단순히 생체 신호를 전달하는 전달자가 아니라 인간을 조정하는 사령탑이라는 의미”라며 “인슐린, 성장호르몬, 멜라토닌 등을 잘 관리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몸속 호르몬의 역할과 호르몬 기능을 높여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 등에 대해 알아봤다.
인슐린·성장호르몬·멜라토닌… '몸의 지배자' 호르몬 균형 잡아야 건강
◆‘욱’하는 성질도 호르몬 때문

사람의 몸속에서는 4000종류의 호르몬이 있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정확히 알려진 호르몬은 80~100종류에 불과하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호르몬의 기능과 역할은 연구를 통해 속속 확인되고 있다.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호르몬은 인간의 감정도 조절한다.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은 행복감 등 감정을 조절하고 다른 호르몬의 분비도 조절한다. 세로토닌이 나오지 않으면 우울감이 심해진다. 엔돌핀도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이다. 아기를 낳을 때 자궁 근육을 수축시켜 진통을 유발하고 분만이 쉽게 이뤄지게 하는 옥시토신은 배려의 호르몬으로도 불린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이타적 봉사를 하는 감정에도 관여한다고 알려진다. ‘욱’하는 성질도 호르몬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가바호르몬은 인내심의 호르몬인데 이 호르몬이 부족하면 심리적으로 조급한 마음이 생길 수 있다.

살이 찌거나 식탐을 참지 못하는 것도 호르몬 신호의 영향을 받는다. 인체는 음식을 섭취한 뒤 4시간이 지나면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낸다. 공복감을 느껴 먹을 것을 찾는 것은 위장과 췌장에서 분비되는 식욕 호르몬인 그렐린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렙틴은 그렐린의 반대 역할을 한다. 배가 부르니 그만 먹으라는 신호를 보내는 호르몬이다. 건강한 사람은 두 호르몬이 조화를 이뤄 적당히 음식을 먹은 뒤 조절한다.

이처럼 호르몬은 균형이 중요하다. 특정한 호르몬이 너무 많이 나와도 질환이 생길 수 있다. 부신피질을 자극하는 호르몬과 글루코코르티코이드 호르몬이 부족하면 부신기능이 떨어져 만성피로 증후군이 생긴다. 하지만 이들 호르몬이 많이 분비돼도 쿠싱병이라는 질환이 생긴다. 얼굴이 붓고 비정상적으로 살이 찐다.

◆인슐린, 성장호르몬, 멜라토닌 관리해야

혈액 속 혈당을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슐린은 혈관 청소부로 불린다. 인슐린, 아디포넥틴 등의 호르몬은 혈관을 깨끗하게 한다. 아드레날린 코티솔이 만성적으로 많이 분비되면 혈관에 찌꺼기가 쌓일 위험이 크다. 모세혈관을 포함해 몸속 혈관의 길이는 100만㎞가 넘는다. 지구를 두 바퀴 반 도는 엄청난 길이다. 혈관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인슐린 호르몬이 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음식을 먹으면 당분으로 분해돼 혈액으로 들어간다. 인슐린은 이 당분을 몸속 세포로 전달하는 운전자 역할을 한다. 세포 문을 열어 당분이 잘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당분을 받은 세포는 에너지를 만든다. 인슐린이 제 역할을 못하면 혈액 속 당분이 높아져 끈적끈적해진다. 혈관 벽이 손상되고 탄력도 떨어진다. 이때 생기기 쉬운 질환이 당뇨병이다. 당뇨병이 있으면 망막질환, 신경 질환, 혈관 질환 등이 생기기 쉽다. 고열량, 고지방 식단을 먹고 불규칙한 식습관이 있으면 인슐린이 제 역할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운동을 하지 않아 근육이 부족할 때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스도 인슐린 호르몬의 작동을 방해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부신에서 코티솔 호르몬이 분비된다.

아이들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성장 호르몬은 노화에 직접 영향을 준다. 성장 호르몬은 단백질 합성을 촉진한다. 부족하면 뼈와 인대가 약해져 관절 질환이 생기기 쉽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탈모가 오거나 흰 머리가 많아지고 손발톱이 얇아져 잘 부러지거나 상한다. 피부 탄력이 줄어 주름이 많이 생기고 상처가 잘 회복되지 않는 것도 성장 호르몬이 부족해지면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불면증 치료제로 알려진 멜라토닌은 면역세포인 T세포를 활성화시키고 암 세포 증식을 늦추는 것으로 알려진다. 멜라토닌은 피부색을 결정하는 멜라닌 세포를 조절한다. 비만에도 영향을 준다. 멜라토닌이 잘 분비되면 몸속 백색지방을 갈색지방으로 바꾸는 아이리신도 잘 분비된다. 해로운 지방을 태워 비만을 예방하는 호르몬이다. 하지만 잠을 잘 못자면 멜라토닌 분비에 문제가 생긴다. 잠을 잘 못자면 피부색이 나빠지고 살이 찌는 배경이다.

◆식습관, 근력운동, 수면 건강 중요

이들 호르몬 대사를 원활히 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인슐린이 제 역할을 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식습관 개선이 중요하다. 혈당을 빨리 올리는 당지수가 높은 음식을 피하고 매일 같은 시간에 규칙적으로 식사를 해야 한다. 당지수가 높은 음식은 빵 과자 등 밀가루 음식, 설탕, 흰쌀밥, 액상과당 등이다. 과일 중에서도 수박, 감은 당지수가 높다. 딸기 사과는 당지수가 낮은 과일이다. 카페인은 호르몬 분비를 교란시킬 수 있는 음식이다. 카페인을 섭취한 뒤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이 안오는 등의 증상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돼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루 두 잔인 권장량을 넘지 말아야 한다.

단백질은 성장 호르몬 유지와 균형에 도움이 된다. 지방이 적은 육류와 우유를 적절하게 섭취해야 한다. 중·노년층이라고 해도 근력 운동을 빼놓지 말아야 한다. 근육과 성장호르몬은 연관성이 높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지 않던 사람이라면 매일 걷기 운동으로 몸을 풀어준 뒤 앉았다 일어나기, 아령 들기 같은 근력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버스 두세 정거장 정도는 걷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체 근육에서 나쁜 지방을 연소하는 아이리신 호르몬이 분비된다. 하체 근육이 약해지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

멜라토닌 분비를 위해서는 숙면해야 한다. 밤 11시 이후는 취침 시간으로 정하는 것이 좋다. 침실 조명은 어둡게 하고 잠자기 전 휴대폰 사용은 삼가야 한다. 작은 일에도 소리 내 웃고 즐거워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도움된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줄고 행복 호르몬이 늘면 멜라토닌 분비도 늘어난다. 하루 30분씩 햇볕을 쬐며 걸으면 밤에 멜라토닌이 자연스럽게 분비된다.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도움말=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