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주부 이모씨(52)는 투병 중인 암이 폐암이라는 사실을 최대한 감춘다. 담배를 피워서 폐암에 걸렸다고 오해받기 싫어서다. 이씨는 평생 담배를 손에 쥐어본 적도 없다. 그는 “주위에서 담배를 피웠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억울하고 우울해진다”고 했다.

대한폐암학회가 전국 7개 대학병원에서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386명의 남녀 폐암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54.5%가 전문의 상담이 필요한 수준의 정신적 괴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지난 1주일 동안 자신이 겪은 고통 정도를 10점 만점에 4점 이상으로 답했다.
"여성 폐암 환자, 정신과 치료 병행해야"
정서적 고통을 호소하는 비율은 여성 환자에게서 더 높았다. 남성은 53.6%였지만 여성은 56.1%였다. 개별 항목으로 들어가면 차이는 더 극명했다. 우울하다고 답한 환자 비율은 여성 37.1%, 남성 24.4%였다. 두려움(여성 45.7%·남성 27.8%), 슬픔(여성 37.1%·남성 23.7%), 걱정(여성 61.2%·남성 49.8%) 등 정서와 관련한 모든 항목에서 여성 환자는 남성 환자에 비해 정서적 고통을 더 많이 호소했다.

안희경 가천대 길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여성 폐암환자를 돌보는 의료진과 환자 가족들은 이들이 정서적 아픔이 크다는 것도 고려해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폐암이 과도한 흡연 때문에 발병한다고 보는 사회적 인식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류정선 인하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여성 폐암환자 중 비흡연자는 85%에 달하지만 흡연 때문에 폐암에 걸렸다고 오해받기 쉽다”며 “이로 인해 폐암 투병 사실을 불명예로 받아들이고 정서적으로도 고통받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유전적 요인, 석면, 라돈, 음식 조리 시 발생하는 연기 등 폐암을 유발하는 요인들은 흡연 외에도 많다”며 “일반 국민에게 비흡연 폐암 위험뿐 아니라 예방법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2003~2015년 폐암 수술을 받은 여성 환자 957명 중 93%(887명)는 비흡연자였다. 2012년 2만910명이었던 여성 폐암 환자는 지난해 2만7958명으로 34% 증가했지만 여전히 비흡연 환자가 다수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성별과 무관하게 우울, 불안 등 정서적 고통을 호소한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삶의 질’이 낮게 나왔다.

안 교수는 “정신과 진료에 대한 선입관, 인식 부족 등으로 전문의 상담이 필요할 정도로 불안과 우울 증세가 있는데도 정신과 진료를 받을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33%에 불과하다”며 “여성 환자뿐만 아니라 남성 환자들도 정서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만큼 정신과 진료를 병행해 정서적인 고통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