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네이버 FARM] '마오쩌뚱 60년 복어 금식령'… 국내 황복 대량양식의 실마리가 됐다
김형선 아쿠아토피아인터내셔널 대표는 경남 통영 한산도 앞바다에서 복어를 키운다. 1만5000평 가두리 양식장에 황복을 비롯해 자주복(참복) 졸복 민어 등을 양식한다. 황복은 1kg에 7만원을 넘을 정도로 복어 중에서도 귀한 어종이다. 김 대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 황복의 대량 양식을 성공시켰다.

김 대표는 한국해양연구원(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소속 연구원이었다. 대학에서 수산 양식을 전공한 후 20년 간 해양연구원에 근무했다. 그가 안정적인 연구원 직을 박차고 나와 양식업에 뛰어든 건 16년 전. 경남 거제 어구마을에서 뱃길로 10여분을 달려 도착한 황복 양식장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양식장이 생각보다 큽니다.

“이 근처에선 평균 정도 됩니다. 다행히 오늘은 바람도 거의 없고 날씨가 좋아요. 파도가 거세면 서 있는 것도 힘들거든요. 처음에 양식을 시작할 때 충남에서도 해봤는데 여기(한산도 앞바다)가 수온이나 파도가 가장 좋았어요. 섬들로 둘러싸여있는 곳이라 바람이 적어 황복 양식에 최적입니다.”

▷황복만 키웁니까.

“황복을 키우고, 자주복(참복)과 졸복도 있죠. 육상 양식장에서 치어를 키워 이곳 가두리 양식장으로 옮겨옵니다. (모두 몇 마리쯤 됩니까.) 지금은 다 합쳐서 한 20만 마리쯤 되려나. 물론 실제 출하되는 건 더 적죠. 황복은 크는 데 오래 걸려요. 몸집도 작고. 황복은 2~3년은 키워야 500g까지 크죠. 자주복은 1년만 키워도 1kg가 넘게 자랍니다. 이 황복 좀 보세요. 영국에 관상용으로 수출하려고 한 적도 있어요.”

김 대표가 수심 6m인 수중 가두리 속으로 직접 배합한 인공사료를 던졌다. 작은 황복들이 바다 아래에서 먹이를 먹으러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 녀석들이 한 4개월 정도 된 거예요. 아직 작지요. 이 쪽을 보세요. 같은 시기에 입식한 자주복은 벌써 훨씬 크게 자랐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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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복을 관상용으로도 봅니까.

“복어는 눈이 움직이거든요. 눈을 껌뻑껌뻑하는 게 귀엽습니다. 다른 물고기들은 안 그래요. 복어는 눈 가장자리에 근육이 있어서 이걸로 눈을 감았다 떴다 합니다. 황복은 색도 예쁘고 몸집도 작고 둥그스럼해 보기 좋지요. 대신 성질이 사나워요. 앞에 얼쩡거리는 건 덥석 물거든요. 속담에도 원통한 일을 당해 이를 빠득빠득 가는 걸 '복어 이 갈듯 한다'고 합니다.”

잠시 후 황복을 잠시 바다 속에서 건져내 이빨을 다듬는 작업이 시작됐다. 가두리 양식장에서 키우다 보면 서로 물어 상처를 내기 때문에 다치지 않도록 이빨의 날카로운 부분을 정리해주는 것이다. 황복을 위에서 보니 운동할 때 휘두르는 곤봉처럼 생겼다. 옆에서 보면 서커스 공연을 하는 광대가 연상된다. 황복이라는 이름은 이 물고기의 몸 색깔이 노란 데서 붙여졌다. 노란색 띠가 입 아래부터 꼬리 자루까지 이어져 있는 게 특징이다. 가슴 지느러미 뒤쪽에 큰 점이 있어 눈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미식가들은 황복을 ‘복어 중의 복어’로 치는 경우가 많다. 살이 쫀득쫀득해 씹을수록 담백한 단맛을 쏟아낸다고 한다. 자주복이 1kg당 2만5000~3만원에 팔린다면 황복 값은 두배가 넘는 1kg당 7만~8만원이다.

김 대표는 해양연구원에 근무했던 1990년대 초 황복 양식 연구를 시작했다. 참게 연구를 위해 임진강을 자주 드나든 것이 황복과의 첫 만남이었다. 황복은 원래 서해의 연안과 하구를 왔다 갔다하면서 사는 어종이다. 바다에서 자란 후 강으로 올라와 산란한다.

김 대표는 어민들이 알을 낳으러 강으로 올라오는 황복을 잡아 비싼 값에 파는 걸 보고 연구할 가치가 있겠다 싶었다고 한다. 황복 양식을 주제로 한 정부 과제를 1995년부터 3년 동안 맡았다.

▷어쩌다 황복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그 당시 우리 (연구원) 팀이 황복 말고도 여러 물고기 양식법을 연구했어요. 요즘 많이 하는 연어, 송어 양식도 그 때부터 연구했던 거예요. 참조기 참게 새뱅이(민물새우) 이런 것도 했었고. 우럭도 양식이 잘 안 됐을 때부터 기술을 연구했고요. 그 때 황복이 워낙 귀하고 개체 수가 많이 줄었어요. 보호를 하자는 운동도 있었고, 가격도 아주 비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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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복어 어종과 많이 다릅니까.

“사람들은 복어를 일본 생선이라고 많이들 생각해요. 일본이 복어를 가지고 세계화에 성공한 건 맞지만, 사실은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복어를 많이 먹었거든요. 이 중국의 복어가 바로 황복이에요. 자주복은 일본과 한국과 중국에 다 있지만, 황복은 중국과 한국에서만 살아요. 살이 아주 달고 향기롭습니다.”

▷그렇게 맛있습니까.

“흔히들 '황복은 봄에 먹는다'고 아는데 맛으로 치면 틀린 말입니다. 봄에 알 낳으러 강으로 올라오니 그 때만 잡을 수 있고, 그래서 제철이 봄이라고 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 땐 황복이 알을 차고 있기 때문에 영양분이 알로 가서 사실 맛은 덜 합니다. 양식 황복은 계절과 상관 없이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3년 간의 노력 끝에 1997년 황복 양식에 대한 기초 연구가 끝났다. 하지만 전례가 없어 양식을 하겠다고 나서는 어민이 없었다. 한 번 잘 키우면 비싸게 팔 수 있지만, 키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리스크가 컸다. 김 대표는 고민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창 연구원 벤처창업을 유도하는 정책이 나왔을 때였다.

▷그래서 직접 뛰어든 겁니까.

“어민들을 위해서 양식 기술을 개발한 건데, 사실 어민들 사이에선 '정부가 개발해 놓은 것 하면 망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죠. 하하. 또 기초 연구는 끝냈지만 연구가 다 완성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달 착륙했다고 우주 연구가 끝난 것이 아니듯이요. 이건 해 볼 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비전이 있어보였나요.

“잘 될 것 같았어요. 왜냐하면 중국에서 원래 복어를 많이 먹었는데, 1945년 전쟁 때 군인들이 복어를 먹고 독 때문에 자꾸 죽으니까 마오쩌둥이 60년 간 복어 금식령을 내렸어요. 그게 풀리는 게 2005년이었거든요. 13억 중국인이 복어를 먹기 시작하면 황복 양식이 유망할 거라 본 거죠.”

10년 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2001년 연구원을 나와 아쿠아토피아란 회사를 차렸다. 한산도 앞바다 가두리 양식장에서 황복을 양식했다. 황복은 크는데 2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그 사이엔 민어나 참돔 등 다른 물고기를 키워 내다 팔았다. 다른 양식장을 컨설팅해주며 벌어들인 수입은 황복 양식에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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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출엔 성공했습니까.

“2005년 복어 금식령 해제를 앞두고 중국에서 한창 논란이 일어났어요. 예정대로 금식령을 해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고, 또 아무나 요리를 하면 사고가 날 위험이 있으니 금식령을 풀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죠. 한국에서 100분 토론하듯이 중국 TV에서 이 주제를 놓고 매일 토론을 했어요.”

▷결과는요.

“해제가 안 됐어요. 사실 중국 양식업자들도 금식령이 풀리면 내다 팔기 위해 복어를 미리 키우고 있었거든요. 그 사람들이 자국 내에서 못 팔게 되면서 2005년 이후엔 중국에서 양식한 복어가 한국에 싸게 들어왔죠. 한국 어민들의 복어는 설 자리가 더 좁아졌고요.”(중국의 복어 금식령은 2013년부터 차츰 풀려 2015년 해제됐다.)

황복 중국 수출은 예상처럼 되지 않았지만 김 대표는 민어와 참돔을 팔면서 양식업을 이어갔다. 황복 양식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황복 요리 전문점을 직접 열었다. 김 대표의 아내가 복어 요리 자격증을 따서 한산도에 식당을 냈다. 황복의 맛을 아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았다. 그 사이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황복 양식 노하우가 쌓여갔다.

▷그럼 키운 황복은 주로 식당에서 씁니까.

“아내가 힘들다고 해서 지금은 안 하고 있어요. 대부분은 서울에 있는 황복 요리 전문점에 납품합니다. 올해는 황복 가공상품을 기획해서 대형마트에 내볼까 해요. 지난 복날에 자주복으로 구성한 복어탕 상품을 이마트에서 팔았는데 반응이 괜찮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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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은 안 합니까.

“중국으로 보내려면 규모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우리가 아직까지 그렇게는 안 돼요. 중국은 생산량을 1억마리 규모로 요구해요. 저 혼자 하기보단 주변 양식장과 함께 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 근처 바다에서 양식 기술을 공유해 황복 클러스터를 만들고 싶어요. 제주도에서도 광어 양식장 열 곳이 모여서 조합을 꾸리고 브랜드를 만든 사례가 있거든요. 규모화해서 품질 안정성도 갖추고요.”

▷하겠다는 사람이 있나요.

“충청도에서도 하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쪽 바다는 제가 어장 환경이 어떤지 모르잖아요. 어설프게 전수했다가는 원망만 들어요. 이쪽 어장은 사례가 있잖아요. 제가 여기서 16년을 해왔지 않습니까. 이 쪽에서 하겠다는 사람 있으면 제 노하우 공유해서 제대로 해보고 싶죠.”

김 대표가 황복 양식 연구를 시작한 지도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실수도 하고 실패도 겪었다. 귀한만큼 키우기도 힘든 황복, 하지만 워낙 비싼 탓에 수요는 확 늘어나지 않는다. 그 사이 황복 양식을 시도했던 다른 어민들은 몇 해만에 포기하기도 했다. 그가 어렵고 까다로운 황복 양식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복어를 바다 생태계의 황제라고 합니다. 복어 중에서도 가장 귀한 게 황복이에요. 예전엔 복어 하면 곧 황복을 뜻했어요. 복어가 돼지고기처럼 맛있다고 해서 하돈(河豚‧강의 돼지)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렇게 민물까지 오는 어종이 바로 황복이거든요. 사람들에게 이런 황복의 가치와 진면목을 알리고 싶습니다.”

거제=FARM 고은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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