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갈색)를 공격하는 TCR-T세포(보라색). NIH·카이트파마 제공
암세포(갈색)를 공격하는 TCR-T세포(보라색). NIH·카이트파마 제공
암 치료가 정상세포의 피해는 최소화하면서 암세포만 저격하는 방식으로 정교해지고 있다. 근적외선, 초음파 등을 활용해 항암제 효과를 극대화하는 새로운 치료법이 잇따라 성과를 내고 있다. 이대호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전화 컴퓨터 카메라 등 다양한 기술이 스마트폰 하나에 집약된 것처럼 암 치료도 여러 기술이 결합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며 “암 치료법이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빛에 반응해 암세포만 저격

빛에 반응하는 항체 NIH·카이트파마 제공
빛에 반응하는 항체 NIH·카이트파마 제공
빛과 면역 치료를 결합한 항암 치료법이 주목받고 있다. ‘광(光) 면역요법’은 근적외선에 반응하는 화학물질과 특정 암세포에 달라붙는 성질을 지닌 단백질 항체를 결합한 약을 환자에게 주사한 뒤 근적외선을 쪼여 항체가 암세포를 파괴하도록 유도한다. 암세포만 공격하고 정상세포는 공격하지 않는다. 고바야시 히사타카 미국 국립보건원(NIH) 주임연구원이 2011년 개발했다. TV, 리모컨 등의 무선 조작에 쓰이는 근적외선은 인체에 무해하다.

미국 일본 등에서 임상 연구가 활발해지는 데다 성과도 나오고 있다. NIH와 아스피리안테라퓨틱스가 수술이나 항암제, 방사선 등 기존 치료법으로는 효과가 없는 두경부암 환자 8명을 대상으로 2년 전부터 임상시험한 결과 3명은 완치됐고 다른 4명은 암세포가 작아졌다. 아스피리안테라퓨틱스는 2019년 상용화를 목표로 잡고 있다. 일본에서도 조만간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고바야시 주임연구원은 “다른 종류의 항체도 개발해 두경부암뿐 아니라 다른 암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빛·초음파로 암 저격… 항암치료 패러다임 바꾼다
◆국내서는 광역학 암치료 활발

국내에서는 정상세포의 손상을 최소화하는 광역학 치료법의 정확성을 높이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빛에 반응해 활성산소를 만드는 광과민제를 환자에게 주사한 뒤 암세포가 있는 부위에 빛을 쪼아 암세포를 파괴하는 원리다.

박도현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동성제약과 흡수력이 좋은 광과민제를 췌장암 환자에게 주사한 뒤 내시경으로 암세포에 선택적으로 빛을 쪼여 파괴하는 치료법을 개발 중이다.

김철우 서울대의대 병리학교실 교수가 창업한 바이오인프라는 초음파를 이용한 암 치료법을 개발해 임상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초음파에 반응하는 가스와 약물을 주사한 뒤 약물을 전달하고자 하는 신체 부위에 초음파를 쏴 소포에 쌓인 약물을 터뜨리는 방식이다. 약물 전달이 어려운 뇌에도 항암제가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면역세포 조작해 고형암까지 정복

다국적 제약사들은 CAR-T 치료제와 비슷한 TCR-T 치료제의 상용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CAR-T 치료제는 환자의 피에서 면역세포의 일종인 T세포를 특정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조작한 뒤 다시 주입하는 원리다. TCR-T 치료제도 T세포를 조작한다는 점에선 CAR-T 치료제와 비슷하지만 적용할 수 있는 암의 범위가 더 넓다.

지난 8월 다국적 제약사 길리어드가 13조원에 인수한 CAR-T 치료제 전문기업 카이트파마는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와 공동으로 자궁경부암 등 고형암에 TCR-T 치료제를 적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도 TCR-T 전문 벤처기업 어댑티이뮨 테라퓨틱스와 손잡고 난소암, 비소세포폐암 등 고형암의 TCR-T 치료제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이 교수는 “아직 연구실 실험 단계이긴 하지만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세포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