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홍종학 장관, 논란 끝에 임명되셨으니…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논란 끝에 장관에 임명됐다. 야당의 반발은 여전하다. 그러나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야당도 이제 홍 장관이 중소·벤처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견제에 철저를 기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일 것 같다.

물론 그가 장관에 임명됐다 해서 멍에까지 다 벗은 것은 아니다. 국민의 비난은 부의 대물림이 아니다. 말 다르고 행동 다른 그의 ‘내로남불’식 편법 증여 과정이 비난의 대상이었다. 중기부 장관이라는 자리가 그런 말과 행동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중소·중견기업 경영자의 가장 큰 고민 가운데 하나는 가업 승계다. 평생 일군 가업을 2, 3세에 물려주려는데 그게 결코 쉽지 않다. 상속·증여세 탓이다. 회사를 팔아야 세금을 낼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

홍 장관은 앞으로 수많은 중소·중견기업인을 만날 것이다. 그들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증여는 자신의 경우처럼 서두르는 것이 좋다고 할까. 맞는 얘기는 맞는 얘기다. 일찌감치 자식들에게, 손주들에게 물려주는 게 정답이다. 모녀 간 대출 각서까지 써가며 물려준다고 해도 그건 불법이 아니다. 문제는 그 얘기에 중기인들이 공감하느냐다. 천만의 말씀이다.

열이면 아홉이 맨주먹으로 시작한 기업이다. 서둘러 증여하고 싶어도 증여할 것이 한 톨도 없던 사람들이다. 하루하루 넘기는 게 고통이었다. 부도 위기에 은행 문을 제 집 문지방 넘듯 드나들어야 했고, 처가는 물론 먼 친척에게까지 손을 벌려야 했다. 수주를 위해 사방을 뛰어다녔고, 납기를 맞추려고 공장에서 날밤을 새웠다. 접대할 곳은 왜 그리 많던지. 그렇게 일군 기업이다. ‘마치코바(동네공장이라는 일본말)’는 싫다며 버티는 자식에게 물려주고 이제 쉬어볼까 했더니 이게 불가능한 일 아닌가.

한국의 상속·증여세율은 단연 세계 최고다. 부모가 사망해 자녀가 회사를 물려받으려면 상속세율 50%에 경영권에 부과되는 가산세까지 모두 65%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회사를 팔지 않고선 도저히 감당할 방법이 없다. 평생 노력의 결과를 빼앗고 가업 승계를 징벌하는 이런 나라가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상속세가 0%인 나라가 부지기수인데 말이다.

세계 1위 손톱깎이 기업 쓰리세븐, 국내 종자업계 1위 농우바이오가 바로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해 매각한 회사다. 며칠 전에도 최대 콘돔 제조사 유니더스가 그런 처지가 됐다.

중기부가 지난해 2979개 중견기업을 조사했다. 78.2%가 가업 승계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상속·증여세 부담 탓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가업 승계 지원 제도다. 사회에 일자리와 가치를 창출해 기여한 기업에 경영의 안정성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자칫 사장될 수도 있는 기술과 노하우를 유지하면서 장수 기업으로서 명망을 이어가도록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가업 승계를 기술 승계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우리도 그런 제도가 있다. 하지만 까다롭기 짝이 없다. 수혜 기업이 많아도 연간 60여 개다.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내년부터는 가업 영위 기간과 상속 재산 규모 조건이 더 까다로워진다. 문재인 정부의 부자 증세 기조 탓이다. 상속세 탓에 기업을 팔아치워야 하는 기업인들의 고민은 더 깊어지게 됐다. 홍 장관이 그런 현실에 어떻게 대응할까.

자신이 이룬 것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려는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게 인류 발전의 동력이었다. 누가 부인하겠는가. 홍 장관도 장모가 중학생 딸에게 건물을 증여하는 과정은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외국에서는 부자들이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기부한다며 열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실상을 모르는 얘기다. 기부 천사라는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도 자신과 자식들의 재단에 기부할 뿐이다. 미국은 우리와 달리 이런 기부에 증여세가 없다. 자신의 피붙이에게 재산권을 영원히 넘겨주는 일이다. 록펠러 가문의 역사를 보라. 그들의 거액 기부가 놀라울 리 없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골머리를 앓는 기업인들이다. 그들에게서 가업 상속의 고민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홍 장관이 할 일이다. 상속·증여세율 인하에도 앞장서주면 좋겠다. 그게 그 스스로 편법 상속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