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프리존특별법이 또다시 암초에 걸렸다. 최근 당·정·청 비공개회의에서 이 법이 국정철학, 정책방향과 맞지 않고 대기업 특혜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청와대가 반대의견을 표명했다고 한다. 허구한 날 싸우던 여야가 모처럼 접점을 찾아가는 와중에, 청와대에 의해 일단 제동이 걸린 것이다. ‘청와대 우위’인 당·청 관계를 감안할 때 현재로선 올 정기국회 통과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다.

규제프리존법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 지역별 전략산업에 대해 금지된 것 외엔 모두 풀어주는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혁신 법안이다.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4개 광역시·도가 2개씩 27개 전략산업(세종시는 1개)을 선정하면, 입지·재정·세제·금융·인력 등을 파격 지원하는 게 골자다. 자율주행차, 드론, 사물인터넷, 에너지신기술, 바이오, 헬스케어 등 신산업의 물꼬를 트면, 향후 5년간 일자리 17만 개를 만들 것이란 전망도 나와 있다. 미래 먹거리를 위한 민생법안이자 일자리 법안인 셈이다. 14개 시·도지사가 당적을 떠나 한목소리로 통과를 촉구한 이유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의 반대이유는 좀체 납득하기 힘들다. 규제프리존법이 정책방향, 국정철학에 맞지 않는다면,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발족시킨 것은 구색 갖추기로 여겨질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혁신창업국가’라는 비전도 벤처기업인들에겐 말뿐으로 비치게 된다. 일부 시민단체가 이 법을 ‘최순실법, 민영화법’으로 낙인찍은 데 청와대가 동조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또한 ‘규제완화=대기업 특혜’란 낡은 고정관념도 이젠 버릴 때가 됐다. 규제 체감도가 가장 높은 것은 오히려 벤처 스타트업들이다. 오죽하면 “벤처사업 하다가 법률 전문가가 됐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오겠나.

한국은 4차 산업혁명 적응력에서 주요 45개국 중 25위에 불과하다. 일본(12위)은 물론 말레이시아(22위)보다도 뒤처져 있다. 낡은 규제와 기득권의 지대추구로 산업 순환계가 꽉 막혀, 혁신 일자리가 생겨날 틈이 없다.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 수준인데도 절박함이 안 보인다. ‘일자리 정부’를 자임하며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설치한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