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산업이 침체를 겪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20조원 안팎의 공적자금을 투입했음에도 국제 경쟁력은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조선업 구조조정 방안을 꺼내지 않고 있다. 아예 밑그림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수출입은행이 최근 성동조선해양의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높다는 실사 결과를 내놓고도 구조조정 방향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회계법인 실사 결과 성동조선의 청산가치는 7000억원으로 존속가치(2000억원)보다 5000억원 많았다. 하지만 수은은 정부의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리 방향을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아직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해부터 성동조선을 비롯해 중견·중소 조선사 구조조정 이슈가 불거진 것을 감안하면 늑장 대응이란 비판도 제기된다. 유일호 당시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조선산업을 경쟁력과 수익성 위주로 재편하겠다”며 “유휴설비와 인력 감축 등이 차질 없이 이행되도록 엄밀하게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년1개월여가 지난 지금도 조선사 구조조정은 별다른 진척이 없다. 사실상 방치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게 여러 전문가의 지적이다.

산업 구조조정이 실종된 요인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꼽힌다. 지난 5월 정권 교체 과정에서 다른 정치·경제 현안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린 게 대표적이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일자리 중심 경제를 앞세우자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 동력은 현저하게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구조조정을 추진할 컨트롤타워가 여전히 불명확한 것도 문제다. 기존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 방식은 바뀐 게 없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겠다던 구조조정 관련 경제관계장관회의는 새 정부 출범 후 아직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 사태 이후 6개월여가 지났지만 구조조정은 국책은행이나 시중은행에 책임이 넘겨져 있다”며 “정부가 산업 구조조정의 밑그림을 그리지 못해서 뚜렷한 잣대도 못 세우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