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부터), 박상기 법무부 장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 제정과 관련한 당·정·청 회의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부터), 박상기 법무부 장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 제정과 관련한 당·정·청 회의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여권 '검찰 개혁' 드라이브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20일 국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위한 긴급 당·정·청 회의를 열었다.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비리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날에 긴급 회동한 것을 놓고 당 안팎에서는 청와대와 여당이 작심하고 검찰 개혁에 본격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대통령인 저와 제 주변부터 공수처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며 공수처 법안 통과를 국회에 촉구했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회의 뒤 기자들에게 “공수처 설치는 국민 86%가 찬성하는 온 국민의 열망이자 촛불혁명 요구로 실현돼야 할 국정과제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국회 통과를 위해 당·정·청이 협력해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공수처는 행정부 고위직, 국회의원, 판·검사 등 고위공직자의 각종 비리를 수사하는 독립적 기관이다. 검찰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

이날 회의에는 당에선 우원식 원내대표·김 의장, 정부에선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이금로 법무부 차관, 청와대에선 조국 민정수석과 김영현 법무비서관 등이 참석했다. 새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국회를 찾은 조 수석은 인사말에서 “공수처는 검찰 개혁의 상징”이라며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개혁과제 중 첫 번째가 적폐청산, 검찰 개혁”이라며 “저는 대통령 수석비서관으로서 공수처 추진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1일 열리는 제1소위원회에서 공수처 설치법을 상정해 논의할 계획이다. 박범계 민주당 최고위원은 “적폐청산의 완결이자 첫 번째 주제라 할 수 있는 것이 공수처 설치법”이라며 “자유한국당도 제대로 된 공수처를 만드는 데 협조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라며 한국당을 압박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공수처 설치에는 원론적으로 찬성하지만 공수처장 임명 방식과 규모 등 각론에서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한국당은 기본적으로 설치에 반대하고 있지만 기류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지난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사들이 정의와 의기를 상실했다면 이제 그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검찰 스스로가 국민의 검찰로 태어나지 못한다면 검찰에 과감한 메스를 대야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 여권이 검찰개혁에 실패하면서 정권 내내 검찰과 갈등을 빚은 일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정세균 국회의장(가운데)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들과 정례회동 전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오른쪽)의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정세균 국회의장(가운데)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들과 정례회동 전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오른쪽)의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입법수장의 이례적 입장 표명

정세균 국회의장이 정치권을 향한 검찰의 전방위 ‘사정 칼날’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정 의장은 20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정우택 자유한국당,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 등과 정례 회동 자리에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와 관련해 국회 정보위원 5명이 (국정원 돈을 받은 사람인 양) 얘기가 나오는데 당사자들에게는 치명타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철저한 (메시지)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국회의장실 관계자가 전했다. 특활비 공방의 진앙으로 국정원을 거듭 지목한 것이다.

정 의장은 검찰 개혁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정 원내대표가 “검찰이 (최경환 의원 등에 대한) 피의 사실을 언론에 미리 흘리는 등 망신 주기식 수사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정 의장은 “그래서 국민으로부터 검찰 개혁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니냐. 검찰 개혁에 여야를 떠나 동참하자”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출신인 정 의장이 야당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에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한 것은 이례적이다.

정 의장의 발언은 검찰이 국회 경내까지 들어와 수사권을 행사한 것을 ‘국회 권위 무시’로 판단하고 입법 수장으로서 ‘견제구’를 날린 것으로 풀이된다. 나아가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위한 여야 간 공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포석이란 해석도 나온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야 간사들은 검찰 특활비의 법무부 상납 의혹에 대한 청문회 개최 여부를 논의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한국당은 의혹을 밝히기 위해 청문회 개최를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현재 진행 중인 국정원 특활비 청와대 상납 수사에 대한 물타기 의도라며 청문회에 반대했다.

한국당 소속 권성동 법사위원장은 “법무부는 검찰 특활비의 60~70%를 대검찰청에 보내고 30~40%를 법무부 장관의 쌈짓돈처럼 사용하고 있다”며 “검찰총장은 이 예산이 수사 목적에만 사용되도록 편성된 예산임을 알면서도 장관이 쓰는 것을 묵시적으로 승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이날 베트남으로 출국하기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특활비 상납 의혹은) 국정원 특활비와 다를 바가 전혀 없다”며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도 같은 선상에서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간사인 금태섭 의원은 “검찰 특활비를 위법하게 썼다든지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자료를 찾기가 힘들다”며 청문회 개최에 반대했다. 여야는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오는 23일 법사위 전체회의를 열어 박상기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현안질의를 하기로 했다.

서정환/배정철/박종필/유승호 기자 ceoseo@hankyung.com